장애인 체육의 시작은
재활체육에서부터

한국은 의료접근성이 좋아 재활치료를 받는 게 어렵지 않으나, 재활체육 시설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하지만 재활체육은 장애인들이 생활체육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하기에,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

글.    이민구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에 맞추어
동기와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는 재활체육

마라톤, 자전거, 피트니스클럽 등 다양한 스포츠를 하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사고 전의 스포츠 활동을 이어 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할 줄 알던 것을 못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휠체어 사용자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스포츠가 있고 또 그 종목의 장애인 선수들이 이미 비장애인 못지않은 스포츠 역량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운동 기능을 배워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걷기까지 2년이 걸리고, 10살은 되어야 뛰는 모습에 멋이 들기 시작하듯이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난 이 사람도 휠체어를 사용해 돌아다니고, 또 스포츠를 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의 체육교육(physical education)이 필요하다. 휠체어에 올라타야 하고, 앉은 자세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며, 팔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몸통을 잘 조절해야 한다. 바깥의 노면, 경사로 등 걸림돌에서는 상당히 고급 기술을 익혀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스포츠 활동을 위해서는 종목에 맞는 특수한 휠체어가 필요하며 그 기술을 배워야 한다.
재활체육은 이러한 장애인 체육교육(특수체육)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재활체육은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에 맞춰 최적의 운동 동작을 가르치고 적합한 스포츠 참여를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장애인 체육’ 하면 통합체육을 떠올리는데 이와는 다르며, 통합체육 전 단계에 해당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있고, 또 다양한 장애 유형이 같이 있는 그룹이 함께 운동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통합체육이라면, 재활체육은 같은 장애 유형이 모여 그 장애 유형에 딱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애 유형에 맞춘다는 의미에서 재활치료(물리치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나, 재활체육은 신체기능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운동을 해야겠다는 동기를 만들어 주고, 또 그룹운동으로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 재활치료와는 프로그램 구성부터 다르다.

주체성을 가지는 생활체육으로
이어지기 위한 발걸음

장애인 체육의 시작에서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주안점은 장애가 ‘선천’이냐 ‘중도’냐이다. 사고로 척수 장애인이 된 중도 장애인과 달리 뇌성마비에 의한 선천적 장애인은 자신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성인이 되기 일쑤다. “전 이렇게 땀 흘리며 숨차게 운동한 게 처음이에요.”, “몰랐는데, 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네요.” 실제로 운동을 시킨 성인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얘기다. 12년의 초·중· 고 학창시절 동안 적절한 체육 교과과정도 없지만, 장애 유형을 잘 모르는 체육교사들은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장애 학생을 열외로 두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치료실에 간다고 조퇴까지 한다면 그 장애 학생은 ‘아파서 운동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또 장애 학생은 스스로를 ‘운동을 못하는 사람’을 넘어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중도 장애인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 적절한 운동 방법에 대한 교육이 주로 필요하다면, 선천적 장애인에게는 재활체육으로 운동 방법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평생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심어 줘야 한다.
재활체육 단계를 거친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 유형으로 가능한 기본 운동 동작을 익히고 그에 적합한 스포츠 종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종목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할지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성을 가지는 생활체육으로 전이된다. “난 휠체어농구를 할 거야”라고 마음먹으면 휠체어농구팀을 찾아 가서 함께하면 된다. 팀에 들어가면 장애인스포츠지도사와 선배 선수에게 농구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한다. 생활체육과 장애인스포츠지도사는 장애유형별 전문성보다는 종목별 전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인 신체활동 생애주기 속
재활체육의 중요성

재활체육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장애 유형이 다양하듯, 시설도 다양해야 한다. 활동 반경이 넓지 않은 중증 지체 및 뇌병변 장애인, 시각 장애인에게는 넓은 시설보다 작은 공간에 적합한 장비를 갖춘 시설이 필요하다. 반면, 지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 또 경증 지체 장애인의 경우 더 큰 규모의 시설이 적합할 수 있다. 신체활동이 아직 미숙한 장애인을 위한 재활체육 시설은 작더라도 집과 일터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것이 더 효과적이다. 생활체육은 접근성보다는 종목에 맞는 공간과 시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장애인육상은 트랙에서, 휠체어농구는 농구 코트에서, 파라 카누는 하천에서, 파라 아이스하키는 아이스 링크에서 하게 되니 그런 시설을 배리어프리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신체활동 생애주기는 병원의 재활치료 단계부터 사회로 나와 재활체육 단계를 거쳐 장애인 생활체육에 이르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각 단계로의 이전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단기간에 장애인이 안정적인 생활체육 참여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한국은 의료접근성이 좋아 장애인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재활체육 시설이 빈약해 장애인들이 생활체육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어렵다. 재활체육의 단계 없이 종목별 생활체육 단계로 이전하라는 것은 마치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 달리기와 앞구르기를 배워야 할 초등학생에게 야구 규칙을 가르치고 배트와 글로브를 쥐여 주는 것과 같다.
재활체육은 평생 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실에서 나온 장애인이 빨리 생활체육으로 넘어가는 재활체육 프로그램이 좋은 재활체육 프로그램이다. 또 장애 유형마다 적용 기간이 다르다. 독일의 경우 인지 장애가 있을 경우 6년이라는 가장 긴 재활체육 프로그램을 적용한다. 치료실이 운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장애인과 그 보호자의 인식 개선도 재활체육 시스템 마련 못지않게 중요하다. 재활체육부터 장애인육상 전문체육까지 시행하고 있는 우리 ㈜좋은운동장에서는 치료실을 전전하는 장애학생과 부모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10년 동안 치료실 열심히 다니면 국가대표 환자가 되고, 10년 동안 운동장 열심히 나오면 국가대표 선수가 됩니다.”

글을 쓴 이민구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로 있다. 뇌병변 장애인과 척수손상 장애인을 위한 재활체육 개발과 장애인 육상에 대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재활체육과 장애인스포츠로 장애인의 건강과 사회적 독립을 지원하는 ㈜좋은운동장을 함께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