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온 릴리 씨도전하는 근력으로
여자야구를 시작하다

우리가 쌓아 온 어제는 오늘의 나를 만든다.
릴리 씨가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동력은 끊임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자신에게 있었다. 이스트서울 여자야구팀의 우익수.
아직은 새내기이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더 발전할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릴리 씨는 오늘도 공에 시선을 집중한다.

글.  임산하      사진.  황지현      영상.  최의인

  • 주저 없이 시작한 야구

    흔히 야구는 인생을 닮았다고 말한다. 9회말 2아웃까지도 승부는 예측할 수 없고,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기에. 그래서 언제든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애석하게도 3할의 확률을 넘기기란 어렵다. 한 번 흔들리면 투수의 공은 쉽게 빠지고, ‘무사 만루’에서 ‘잔루 만루’로 이닝이 종료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끝내 공은 우리의 편이 된다. 아무리 확률 게임이라고 해도, 각자의 최선과 노력으로 확률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이것이 야구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이다. 이스트서울 여자야구팀의 우익수로 활동하고 있는 릴리 씨가 서울에 자리를 잡기까지 쌓아 온 삶에도 하루하루 애쓴 시간이 녹아 있다.

    “2016년 8월 10일. 한국에 온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요. 고향인 호주와 달리 한국은 제게 기회가 많은 땅으로 보였어요. 비록 땅은 작지만 그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사회가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죠. 물론 누군가에게는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겐 그것이 장점이었어요. 처음에는 영어 교사로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에 머물렀고, 이후에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 관악구로 이사했다가, 다시 일자리를 구해 경상남도 함안과 경기도 김포로, 그리고 1년 반쯤 전에 서울 강동구에 터를 잡았어요.”

  • 여러 지역을 거쳤다는 것이 그가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증거가 아닐까. 그는 현재 성과학자로 성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특히 여성을 위한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직 오픈 전이어서 소개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기대감을 내비친다. 릴리 씨는 언제나 마음이 끌리는 일에 직진을 해 왔고, 야구도 그중 하나였다.

    “함안에 살 때 우연히 창원NC파크에서 야구를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국의 야구 관람 문화가 너무 재밌는 게 아니겠어요? 선수마다 응원가가 있어서 정말 신나고, 팀이 하나가 되어 울고 웃는 게 짜릿하더라고요. 이때부터 야구에 관심이 생겼죠. 사실 호주에서 야구는 비인기 종목이라서, 그전까지는 야구를 본 적이 없었어요. 해 본 적도 없는 건 물론이고요.”

    학생 때부터 농구, 축구 등을 해서 팀 스포츠에는 잔뼈가 굵었던 그에게도 야구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울로 이사를 온 뒤 SNS를 통해 여자야구팀을 찾아봤고, ‘이스트서울 여자야구팀’을 만났다. 성인이 된 뒤로 팀 스포츠를 할 기회가 마땅치 않았는데, 그에게는 짜릿한 설렘이 밀려왔다.

    “이름에서 끌렸죠. 제가 사는 곳이 정말 ‘이스트서울(East Seoul)’ 즉, 동서울이잖아요. 이곳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낀 데다 분위기가 즐거워 보여서 좋았어요. 이제 3개월 차가 된 신입 우익수여서 제 배번을 단 유니폼을 기다리고 있는데, 26번 유니폼을 입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지금은 연습에 매진하는 중이에요.”

  • 이전까지는 야구장 밖에서 야구를 관람했다면, 이제는 야구장 안에서 직접 선수로 뛰는 릴리 씨. 그는 타격에서도 수비에서도 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집중을 잃지 않으며, 야구 규칙도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직접 타석에 들어서서 안타를 치기 위해 공을 주시하고, 우익수로서 중계플레이를 하기 위해 집중을 하다 보니 야구와 더 친해지는 기분이에요. 사실 모든 스포츠가 쉽지 않지만, 야구는 규칙이 많잖아요. 비로소 제대로 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겨요. 아직 서울에서 프로야구경기를 본 적은 없는데, 올해는 개막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울이 연고지인 팀을 응원하는 팀원들과 함께 가서 저도 응원을 해야죠. 그래도 처음 알게 된 NC 다이노스를요.(웃음) 그리고 올해는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도 열리잖아요. 무척 기대 중이에요.”

    칭찬에 머물지 않는 끊임없는 노력

    신입 우익수에서 당당히 선발 우익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릴리 씨. 이제 그에게 일요일은 ‘야구를 위한 날’이 되었다. 이스트서울 여자야구팀의 연습이 있기 때문이다. 약속된 일요일에 빠지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스타팅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이 생명이죠. 감독님과 코치님께 배우고, 주장 언니는 물론 팀원들에게 조언을 들으면서 점차 나아지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 정말 기뻐요. 그리고 야구는 팀 스포츠인데 함께 친해지기에도 좋은 기회잖아요.”

    연습의 힘이었을까. 지난번 다른 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8번 타자로 등판한 적이 있다며 방긋 웃는 그. 당시 볼넷으로 출루를 했고, 도루 성공에 1득점까지 했었다고. 그러나 아직 타격이 부족하다며 자성도 잊지 않는다.

    “오늘 연습에서도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타격에 좀 더 힘을 내 보자고요. 사실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를 할 때 근처에 배팅을 할 수 있는 야구연습장을 자주 찾아갔거든요. 그땐 야구에 관심을 갖기 전이었지만 타격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알게 모르게 타격을 좋아했어서 좋은 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나죠. 지금도 그쪽에 가면 항상 찾아요. 거긴 포털 지도에도 나오는 곳은 아니에요.(웃음)”

  • 모두의 기대가 모이는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

    3월 20일과 21일, 양일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막전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다. SD 파드리스와 LA 다저스의 경기로 펼쳐지며, 특히 SD 파드리스에는 한국의 김하성 선수와 올해 입단한 고우석 선수가 있어 기대를 모은다. 또 LA 다저스에는 세계적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소속되어 있어 예매부터 전쟁이었다. 이에 앞서 3월 17일과 18일에는 스페셜 게임으로 한국프로야구의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 그리고 팀 코리아가 SD 파드리스, LA 다저스와 경기를 치르게 된다. 어마어마한 관심을 모으는 이 경기가 국내 최초 돔야구장으로 건립된 서울의 고척스카이돔에서 개최된다는 것이 많은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 실제 야구 연습을 하는 릴리 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오늘. 약 40분간 이어진 외야 펑고를 마친 뒤 감독님은 그에게 칭찬 일색이었다. 감독님은 그가 축구를 한 적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는데, 공의 낙구 지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남다르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칭찬에 머물지 않는 릴리 씨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을까.

    “홈런을 치는 4번 타자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하지만 당장 이룰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그렇게 빠르게 얻어 내고 싶지도 않아요. 차근차근 밟아 가야죠. 그리고 앞으로 전국 여자야구대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팀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수로 활약하고 싶어요.”

    지금은 야구와 함께 서울도 알아가는 중

    야구를 애정하는 만큼 서울도 좋아한다는 릴리 씨. 야구 연습이 없는 날에도 운동을 쉬지 않는 그는 서울 곳곳의 명소도 즐겨 찾는다.

    “서울은 도시지만 자연이 가득하죠.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 여러 산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수락산 기차바위가 기억에 남아요. 암벽로프를 타고 오르는 짜릿함이 있었죠. 또 한강도 좋아해요. 자전거를 타고 근처 편의점에서 즉석라면을 끓여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여의도한강공원을 자주 찾는데, 아무래도 출근길 당산철교를 지나며 바라본 풍경이 인상적이어서 그쪽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릴리 씨가 이스트서울 여자야구팀에 입단한 이후 가장 많이 연습을 했던 곳도 서울의 야구장이었다. 그중에서도 살곶이체육공원의 살곶이야구장.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던 그는, 실제로 가 보니 매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 “살곶이야구장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 같아요. 특히 아침 일찍 연습을 할 때면 중랑천 너머로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열심히 땀 흘리는 제가 그 풍광 속의 일부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 얼마나 낭만적인지 몰라요. 게다가 선선한 천변 바람이 불어와 너무나도 시원하지요.”

    연습 후에는 팀원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친목을 다지는데, 가장 추천할 만한 곳으로 릴리 씨는 성동구의 대찬식당을 꼽았다. 제주생고기김치찌개와 불맛제육볶음의 맛이 가히 으뜸이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오늘을 곱씹으며 먹는 밥은 얼마나 달까. 시간을 성실하게 채운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아닐까 싶다.

    “야구는 서로에게도 집중을 많이 해야 하는 스포츠예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워요. 때로 금천구에 있는 금천베이스볼파크에서도 연습을 하는데 그때는 감독님 댁으로 가서 밥을 먹기도 해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살곶이체육공원 살곶이야구장
  • 살곶이체육공원은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부근에 자리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이곳을 지나는 살곶이길은 산책하기 좋은 길로도 불릴 정도다. 살곶이체육공원에는 다양한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살곶이야구장은 인조잔디 설치, 캐치볼장 조명 설치 등 지속적으로 관리·운영되고 있다. 규모 7,002㎡로 센터 펜스까지는 약 87m의 길이를 자랑한다. 대관은 성동구도시관리공단 누리집(sports.happysd.or.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릴리 씨의 이야기 끝에는 늘 미소가 따라온다. 야구를 떠올리면 마냥 행복하다는 그는 나아가야 할 길을 향해 오늘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비록 그 길의 끝에서 홈 플레이트를 밟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열정을 쏟은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인생을 닮았고, 인생은 과정의 연속이기에. 끝으로 릴리 씨는 야구에 대한 열의가 있다면 본인처럼 참여와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마음을 전한다.

“어떤 스포츠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어요.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지 도전해 보길 바라요. 그리고 만일 야구를 남성의 스포츠라고 생각해서 주저하고 있는 여성분이 있다면, 고개를 돌려 봐요. 여자야구팀이 정말 많거든요. 그러니 우리 함께, 여자야구에서 만나요!”


릴리 씨를 따라
서울에서 야구를 즐겨 보자!
  • ©성동구도시관리공단 살곶이야구장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해 있어요. 경치도 좋고, 무엇보다 아침 일찍 연습을 하면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낭만적이에요.”

    주소. 성동구 사근동 102-16

  • ©shutterstock 고척스카이돔

    “서울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본 적은 없지만, 올해는 개막하면 꼭 찾아가려고요. 그리고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가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다니 너무 기대돼요.”

    주소. 구로구 경인로 430

  • ©대찬식당 대찬식당

    “살곶이야구장에서 연습을 한 뒤에 자주 찾는 곳이에요. 특히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을 자랑하는 제주생고기김치찌개는 꼭 드셔 보시길 바라요.”

    주소. 성동구 왕십리로 410 센트라스127동 118호

  • ©금천구시설관리공단 금천베이스볼파크

    “규모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2021년에 문을 열어서인지 깔끔한 시설을 자랑해요. 가까이에 안양천이 흐르고 있어서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도 좋지요.”

    주소.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69-44

  • ©shutterstock 코인 야구연습장

    “게임처럼 즐기는 곳이어도 집중력을 높이기에 좋아요. 물론 실제 투수가 던지는 공과는 다르지만, 타격 자신감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주소. 관악구 관악로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