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e스포츠

e스포츠는 팀이나 개인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의 한 형식이다.
단, 공이나 몸이 아닌 디지털게임으로 경쟁을 하는 것이 여타 스포츠와 다르다. 법률상 전자스포츠라고도 불리는데, e스포츠는 엄연한 공식 명칭이다. 2007년부터 대통령배 아마추어 e스포츠 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 갈고닦은 실력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은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 종목에서 금메달을 2개나 획득했다. 더 나아가 올림픽에서도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누가 뭐라 해도 e스포츠가 대세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e스포츠는 어떻게 대세의 반열에 올랐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e스포츠가 주는 시사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글.    이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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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의 약사(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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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커진 스타크래프트 대회

스포츠가 그러하듯, e스포츠 역시 우연하게 탄생하였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말이다. IMF 시기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은 산업 전반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쳤다. 산업구조와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이 뒤따랐고, 수많은 중년가장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전국 초고속 인터넷망의 확충은 PC방 창업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불러왔다. 이때 개장한 PC방을 알리는 홍보 수단으로 스타크래프트 대회만 한 것이 없었다. 대형 PC방을 개업하고 나서 여는 스타크래프트 대회에는 상금 1,000만 원이 넘는 거금이 주어지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사람들이 대회에 자연스레 모여들었고, 이런 대회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파트너와 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전국에 내로라하는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의기투합하여 팀을 만든다. 게임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는 의미로 이들은 스스로를 ‘프로게이머’라 칭했으며, 그들이 모인 팀은 프로게임단으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되었다. 그 효시는 ‘청호SG’ 게임단이다.
스타크래프트는 이제 민속놀이라고 불릴 만큼 중장년에게도 익숙한 게임이다. 사실 스타크래프트는 IMF 시절 박세리, 박찬호 선수와 더불어 전 국민 희망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당시 청호 SG 소속 신주영은 스타크래프트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하였고, 신주영에 이어 세계래더대회에서 우승한 이기석은 자신의 아이디 쌈장이라는 이름으로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들이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은 주변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에게 큰 뉴스거리였으며, 이들의 경기는 많은 게이머들이 꼭 따라해 봐야 하는 교범이 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산발적인 PC방 대회가 아닌 상시적인 대회가 열렸고, 여기에 그 당시 벤처열풍으로 생긴 회사들이 자사 팀을 만들어 출전하게 되었다. 최초의 독립적인 게임리그 KPGL(Korea Pro Gamers League)이었다. 그리고 이들 대회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 케이블 TV채널, 온게임넷과 MBC게임 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지다 보니 게임단들의 연합체인 협회가 결성되고, 게임과 밀접하거나 게임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핵심 소비자로 삼는 이동통신회사들(삼성전자, SK텔레콤, KTF)의 팀들이 창단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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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등장

2004년 7월 17일, 온게임넷 스카이 프로리그 전기 결승전이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렸다. 스타크래프트 프랜차이즈 스타 임요환의 SKT T1과 한빛 스타즈의 경기에 10만 명이 모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기도 했는데, 그날 관중은 1만6,000명이었다. 신생 게임대회가 전통적인 프로스포츠의 관중을 훌쩍 뛰어넘는 e스포츠의 잠재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서서히 식을 무렵 이를 대체할 게임이 등장했다. 흔히 롤로 불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다. 국내에서 특히 인기였던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롤의 인기는 전 세계적이었다. 또한 게임대회 역시 협회나 방송국 중심이 아닌, 게임사(더 정확히 말하면 게임 퍼블리셔)가 방송과 대회를 전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은 것은 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된다는 점과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세계적으로 최고 실력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 주요 스포츠 리그가 휴업을 했던 것에 반해 e스포츠는 정상적으로 리그가 진행되어 차세대 스포츠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코로나가 약해지면서 총상금 220만 달러가 걸린 2023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 결승전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전 세계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팀이 경합을 벌인 끝에 11월 19일 우리나라의 T1은 중국의 웨이보 게이밍과 대결하여 3:0으로 우승했다. 이날 고척스카이돔 결승전 입장권은 예매 10분 만에 1만8,000석이 매진되었고 암표가 최대 300만 원까지 거래되기도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온라인으로 경기를 관람한 시청자는 4억 명으로 추산되며, 국내외 롤 팬 2만 명은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응원을 하기도 했다. FIFA 월드컵 응원과 다를 바 없었다. 월드컵이 4년마다 열린다면 롤드컵은 매년 열린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스포츠와 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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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의 새로운 활로가 된 e스포츠

e스포츠의 초창기, 신체적인 움직임을 중요시하는 전통적 개념의 스포츠계는 e스포츠를 스포츠 범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북해 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오히려 스포츠계가 e스포츠를 도입하려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해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 경기는 현장판매 없이 예매로만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롤드컵과 유사하다. 관람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착순이 아닌 추첨 방식으로 표를 판매했다. 더구나 아시안게임의 다른 종목들은 입장권 가격이 50위안부터 시작된 반면 e스포츠는 그보다 4배나 비싼 200위안부터였다. 텅 빈 객석을 걱정해야 하는 주최 측 입장에서 e스포츠는 너무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계의 새로운 활로로 적극 모색되고 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e스포츠가 논의되는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6년간 북미 프로스포츠 시청 층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메이저리그(MLB) 평균 시청 연령은 52세에서 57세로 높아졌으며, 북미 아이스하키리그는 33세에서 49세로 껑충 뛰어올랐다. 미국프로풋볼(NFL)은 44세에서 50세였고, 그나마 미국프로농구(NBA)의 평균 시청자 연령이 43세로 낮은 편이다. 스포츠의 메가이벤트라는 올림픽도 고령화를 피해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미국인 시청자 중위연령은 39세였지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53세였다. 더 심각한 것은 시청자 수도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역대 최저치였는데, 직전 대회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보다 무려 35%가 줄어든 것이다.

e스포츠와 협업하기 시작한 스포츠

스포츠가 미래에도 존속하려면 MZ세대를 경기장과 중계 미디어 앞으로 모이게 하는 것은 절체절명의 과업이 되었다. 이미 여러 스포츠 종목들이 e스포츠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축구라면 죽고 못 사는 유럽의 클럽팀들이 먼저 움직였다. 2015년 튀르키예 축구 클럽 베식타시 JK가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을 창단해 튀르키예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TCL) 참가를 필두로 독일 볼프스부르크, 영국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등이 가세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축구를 넘어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농구, 모터스포츠인 F1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20년부터 FC서울, 포항스틸러스, 제주 유나이티드FC 등이 참여하는 온라인 축구게임 리그인 ‘eK리그’를 개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e스포츠의 인기가 기존 스포츠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축구 게임팬들을 K리그도 함께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e스포츠가 던지는 시사점
지루할 틈이 없는 극적인 경기 모델

현재 e스포츠의 인기가 스포츠를 능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상 이면의 것들을 살펴보는 것은 e스포츠뿐만 아니라스포츠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e스포츠는 디지털 미디어에 최적화된 콘텐츠다. 즉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비교적 단시간에 끝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3~4시간씩 소비하도록 하는 것은 라이프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다. 변화가 필요하다. 스포츠계에서도 경기 시간을 단축하고 다이내믹하게 운영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단축하고 얼마나 극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을 e스포츠가 보여 주고 있다. 경기가 지루하다는 것은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의미를 넘어 자본이 이탈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연습도 콘텐츠가 되는 e스포츠

둘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임은 경기뿐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는 형태를 보인다. 연습도 콘텐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각 게임단은 독자적인 채널을 보유하면서 연습을 공개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호흡을 함께한다. 이런 점은 스포츠계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사실 팬들은 선수들이 활약하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궁금해 하며, 이러한 과정이 좋은 결과를 맺는 것을 보고자 현장에서 응원을 하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선수와 팬들이라는 일대다 관계라기보다 일대일의 관계다. 그러다 보니 애착과 충성도는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이 기존 스포츠의 문법과 e스포츠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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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사회에서 맺어지는 선수와 팬의 관계

마지막으로 팬서비스다. 멋진 세리머니가 아니라 선수가 잘하는 테크닉이나 지식을 팬들에게 제공하여 팬들의 실력과 재미를 더욱 강화시켜 주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e스포츠의 경우 스킬이나 아이템 트리를 공개하며, 아마추어들이 따라할 때 주의할 점을 알려 준다. 단순히 경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력도 함께 느는 것이다. 달리 보면 선수와 팬이 아닌 스승과 제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국 초연결사회에서 스포츠 선수와 팀은 어떻게 팬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모델과 방향을 e스포츠가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공적인 융합모델이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e스포츠가 우리나라에서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글을 쓴 이장주는 사회문화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과 게임문화재단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LCK 경기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보려는 열성 시청자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