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스포츠계 ‘핵심 아이콘’으로 떠오른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가 유치에 성공한 대규모 국제 이벤트 중에는 일단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이 있다. 아직 확정 발표는 없지만 2034년 월드컵도 사실상 사우디가 가장 강력한 개최 후보지로 부상하고 있다. ‘2034 월드컵’ 개최를 놓고 경쟁을 하던 호주가 개최 포기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 한 사우디는 카타르에서 열렸던 ‘2022 월드컵’ 이후 두 번째로 중동에서 열리는 월드컵의 개최국이 될 예정이다.

글  .  이세형

이미 시동 걸린 사우디의 스포츠 행사 유치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 유치 및 개최에 적극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차기 국왕이며, 이미 사우디의 실권자로 꼽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국제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사우디 왕세자 자리에 오른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를 개방적인 나라로 바꾸겠다고 강조해왔다. 또 석유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겠다고 밝혀왔다.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스포츠 산업 육성과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 유치는 사우디의 개방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非석유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미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온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해 왔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디리야’ 지역은 현지에서 국가와 왕실의 상징적인 장소로 꼽힌다. 사우디 왕가의 발상지로 통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디리야에서도 사우디 정부는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열었다.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E’의 경우 2018년부터 꾸준히 디리야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사우디 출신의 여성 카레이서인 리마 주팔리가 대회에 참여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고대 아랍의 전통미가 담긴 건물들 사이로 경주용 자동차들이 트랙을 도는 ‘독특한 모습’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사막의 혈투’ ‘사막의 매치’로 불린 WBA·IBF·WBO·IBO 복싱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도 디리야에서 펼쳐졌다. 파격적인 상금으로 유명 테니스 선수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디리야 테니스컵’의 행사장도 당연히 디리야다.

국제 스포츠 업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

사우디는 2023년 6월 세계 골프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지원하는 LIV 인비테이셔널 골프(LIV)와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DD월드투어(옛 유러피안투어)가 ‘통합’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원래 LIV골프와 PGA 투어는 경쟁 관계였다. 2022년 6월 출범한 LIV골프는 사우디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필 미컬슨,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등 유명 선수를 PGA 투어에서 빼갔다. 격노한 PGA 투어가 LIV골프로 넘어간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했을 정도다. 그러나 ‘통합 발표’가 전해지자 결국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전략’이 힘을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동시에 사우디 안팎에서는 “단순한 보여주기 이벤트로 사우디가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니다. 사우디는 스포츠 산업에 진심이다”란 평가도 힘을 얻었다. 특별한 점이 없었고, 경기 수준도 높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던 사우디 국내 프로축구 리그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오일머니를 대대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월드스타’인 네이마르(브라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카림 벤제마(프랑스) 등이 이미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에서 뛰고 있다. 또 사우디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EPL의 명문 팀인 맨체스터시티를, 카타르가 프랑스 리그앙(리그1)의 명문 팀인 파리 생제르맹(PSG)을 인수한 것을 벤치마킹한 모습이다.

Ⓒ디리야테니스컵(Diriyah Tennis Cup)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테니스 시장에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스포츠에 관심 가져

사우디의 스포츠 산업 육성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무엇보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관심은 사우디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다. PIE(사우디 국부펀드)가 한국의 넥슨, 엔씨소프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같은 콘텐츠 기업에 투자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또 사우디는 이웃나라인 카타르가 아랍 국가 최초로 ‘2006 아시안게임’, 중동 국가 최초로 ‘2022 월드컵’을 유치하며 국가 브랜드를 높인 것에도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이슬람 종주국’이란 무겁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스포츠만큼 좋은 도구도 없다. 더 나아가 사우디는 중·장기적인 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에도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우수 인력들의 장기적인 사우디 거주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답답한 이미지와 부족한 문화 콘텐츠 인프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어떻게 해서든 ‘매력 있는 나라’란 이미지와 인프라를 만들어야만 한다. ‘사우디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도 스포츠 산업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사우디가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석유 산업에만 의존해 왔다는 점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국제적인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거나 석유가 아닌 다른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본 경험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사우디가 향후 얼마나 안정적으로 스포츠 행사 관리와 산업 육성에 나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글을 쓴 이세형은 2005년 동아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 등을 거쳤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인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현재는 채널A 정책기획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아일보 디지털콘텐츠와 월간 ‘신동아’ [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코너에서 다양한 중동 이슈 기사를 쓰고 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