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경기장에서
‘편집하는’ 경기장으로

스마트 경기장은 단순히 초고속 통신망과 대형 전광판을 갖춘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람객이 원하는 화면과 정보를 직접 선택하며, 현장의 경기를 자신만의 콘텐츠로 재구성할 수 있을 때 경기장은 비로소 ‘스마트’해진다.
이러한 기술은 경기장의 시설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관람하는 팬의 행동과 역할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글. 이준성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

동상이몽: 같은 경기, 서로 다른 시야
농구 경기장을 찾은 한 가족을 떠올려 보자. 부모는 코트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자녀는 자신이 응원하는 허웅 선수의 표정과 슈팅 동작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한다. 과거에는 모두가 경기장 전광판이나 중계 제작자가 선택한 화면을 함께 봐야 했다. 그러나 최근 부산 KCC 이지스의 홈경기장 가족석에 설치된 카메라 조종시스템과 화면은 관람객이 경기장에서 접할 수 있는 시선을 더욱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람’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지켜보는 수동적 행동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스마트폰, 초고속 통신망, 다중 카메라,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기술이 결합하면서 스포츠 관람은 선택과 조작을포함하는 능동적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 어떤 선수를 따라갈지 어떤각도에서 플레이를 볼지, 어느 순간을 다시 확인할 것인지를 관람객이직접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경기장 관람과 가정 내 중계 시청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2024년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 팬의 58%(MZ세대약 70%)는 경기장에서도 중계처럼 통계 및 분석과 리플레이 이용을원했다. 아울러 관람객 82%가 현장에서 모바일 기기를 쓰는 가운데, 68%는 다각도 경기 장면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는 스마트 경기장 기술이 달라진 관람객의 행동과 요구에 대응하는 핵심 서비스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와 즐거움: 확장되는 현장 관람 경험
스마트 경기장의 또 다른 변화는 경기장 안의 선수와 공의 움직임이 실시간 데이터와 결합한다는 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스탯캐스트(Statcast)는 카메라와 추적 시스템을 통해 투구, 타구, 주루와 수비 움직임을 데이터로 전환한다. 이렇게 생산된 데이터는 타구 속도, 발사각도, 투구 궤적과 선수의 이동 경로를 시각화하여 경기장 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팬들이 경기를 더욱 깊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관람 콘텐츠가 되고 있다.
나아가 증강현실(AR) 기술은 경기 공간 위에 가상 캐릭터나 디지털 그래픽을 겹쳐 보여주며, 팬들이 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체험하도록 돕는다. LA Rams는 SoFi 스타디움에서 AR을 활용해 경기장 위에 거대한 디지털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고, 팬들이 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체험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팬은 더 이상 방송사가 선택한 하나의 화면을 받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위치와 시선에 따라 경기와 콘텐츠를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관중: 경기 가치의 공동생산자
과거 SK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도입했던 4D 리플레이 전광판 역시 이러한 스마트한 경기장으로의 변모의 흐름을 보여주는 국내 사례라 할 수 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을 연결해 특정 플레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이 시스템은 관중이 하나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고 장면을 다각도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같은 홈런이라도 외야 관중, 포수, 타자 또는 상공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장면과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팬들이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과 선택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가치 공동생산’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구단과 방송사가 완성된 콘텐츠를 제작하고 팬은 이를 소비했다. 반면 스마트 경기장에서는 구단이 카메라와 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고 팬이 이를 선택·조합해 자신만의 관람 경험을 만든다. 팬이 최종 수신자가 아니라 스포츠 콘텐츠를 직접 구성하는 편집자이자 공동생산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나아가 팬이 선택한 장면을 저장하고 SNS로 공유하면서 관람 경험은 경기장 밖으로 이어진다.
하이테크(Hi-Tech)가 곧 스마트 경기장인가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항상 좋은 관람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팬이 경기 내내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게 된다면 경기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현장 특유의 함성, 주변 관중과의 우연한 상호작용, 함께 응원하는 감정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실제 Deloitte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는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별 화면이 지나치게 분절된다면 수많은 팬이 같은 순간에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스포츠의 집단적 경험이 줄어들 수 있다.
기술 접근성의 격차도 고려해야 한다. 고가의 기기나 특정 통신서비스 이용자만 새로운 경험을 누릴 수 있다면 스마트 경기장은 일부 팬만을 위한 프리미엄 공간에 머물게 된다. 복잡한 앱 사용법, 경기장 내 통신 지연, 배터리 소모, 개인정보 보호 및 초상권 동의 문제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마트 경기장의 핵심은 기술의 양이 아닌, 관람객이 원하는 순간 적절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데 있다. 지속적인 이용자 조사를 통해 관람의 즐거움을 높이면서 고령층과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개인화된 화면과 공동 응원이 충돌하지 않도록 사용 시점과 방식을 세심하게 설계하고, 관련 데이터는 단기 광고가 아닌 장기적 팬 관계 형성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균형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스마트함
결국 스마트 경기장이 만드는 가장 큰 변화는 더 선명한 화면이나 더 빠른 통신망이 아니다. 과거의 관중이 제작자가 선택한 장면을 바라보는 존재였다면, 미래의 관람객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경기의 모습을 직접 선택하고 해석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다만 이 변화가 스포츠 관람의 진정한 확장으로 이어지려면 기술이 현장의 감정과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경기를 보더라도 각자의 시선으로 경험하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시 하나의 함성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개인화된 관람과 공동체적 경험의 균형, 그것이 스마트 경기장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스마트함이다.

이준성은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이다.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하였으며, 스포츠 소비자들의 심리와 행동, 스포츠 미디어 소비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스포츠 소비가 소비자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