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계절,
가을

계절성 우울증
이겨내기

가을은 예쁜 단풍이 물들고 나들이 하기 좋아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유 없는 쓸쓸함과 무기력을 안겨 주는 두려운 계절이기도 하다. 만약 매해 가을에 이런 증상이 반복되고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단순히 가을을 타는 것이 아닌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일 수 있다. 계절성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실생활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대비한다면 좀 더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다.

글.   이아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을이 되면 왜 마음이 쓸쓸해질까?

계절성 우울증은 1년 중 특정 계절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한 형태로, 겨울형이 가장 흔하지만, 가을형 계절성 우울증도 적지 않다. 가을형 계절성 우울증은 주로 9~11월 사이 시작해 겨울 초까지 증상이 지속되며,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지만 방치할 경우 만성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과 깊은 관계가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뇌의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진다. 세로토닌은 기분, 식욕, 수면 조절에 관여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로, 부족하면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유발한다. 햇빛 자극은 멜라토닌 분비에도 영향을 줘서 일조량이 줄어들면 불면, 졸음, 무기력감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몸의 생체시계에 변화를 일으켜서 전반적인 에너지와 기분에도 영향을 준다.
계절성 우울증의 증상은 일상 속에서 서서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평소 활발하던 사람이 가을이 되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종일 침대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특별한 이유 없이 피로하고 무기력해져서 이전에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만나거나 운동을 즐겼지만, 약속을 피하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업무나 학업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 간단한 업무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수가 잦거나, 책을 읽어도 내용이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수면 패턴도 변한다. 전날 일찍 잠에 들어도 피로감에 늦잠을 자는 날이 잦아지고, 낮에도 졸음이 밀려오거나 거꾸로 불면이 심해지기도 한다. 식욕이 늘면서 간식을 많이 찾고 체중이 계속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된다면 계절성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계절성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

계절성 우울증을 완화하기 위해선 생활 습관을 관리해야 한다. 먼저 햇볕을 충분히 쬐야 한다. 가을, 겨울철에는 일조량이 감소해 세로토닌 분비와 비타민 D 합성이 줄어든다. 가능하다면 오전 10시~오후 2시 사이, 하루 30분 이상 야외에서 걷는 것이 좋다. 점심 식사 후 가벼운 산책을 습관화하면 기분 안정과 수면에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춘다. 주 3회 30분을 목표로 조깅, 자전거 타기, 걷기 등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전신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체력이 약한 경우에는 10분정도 짧게 나누어서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걷기, 계단 오르기, 실내 자전거 타기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식이 관리 측면에서는 비타민 D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연어, 고등어, 달걀 노른자, 버섯류는 세로토닌 활성에 도움을 주며, 오메가-3가 풍부한 통곡물, 채소, 과일 위주의 지중해식 식단은 기분 안정과 전반적인 건강 유지에 긍정적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자주 모임을 갖거나 평소 관심 있는 동호회나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여 대인 관계를 늘리는 것이 무기력감과 고립감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매년 반복되거나 무기력감, 우울감, 불면 등 증상이 심하여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지장이 크거나 자살 사고가 동반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의 상담을 거쳐 약물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계절성 우울증의 치료에는 약물치료, 광치료, 인지행동치료가 효과적이다. 특히 인지행동치료는 반복되는 부정적 사고를 인식하고 교정하여 대인 관계 시 갈등에 대한 대처법을 익히고 우울감 완화를 돕는다. 이를 통해 증상 재발을 막고 장기적인 기분 조절력을 높일 수 있다.계절성 우울증은 증상을 조기에 인식하고 적절한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을 병행하면 회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으며, 치료를 통해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환’ 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첫 걸음이다.

글을 쓴 이아라 교수는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조교수로 불안장애, 우울증, 불면, 치매에 관련한 진료 및 연구 중이다. 동대문구 정신보건센터 및 치매센터에 상담 및 진료의로도 활동하며 지역사회 정신건강 증진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