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만나는
특별한 동물
거대도시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그곳에도 치열한 생존을 위한 야생동물의 삶이 펼쳐진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며 놀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한강공원 한편에는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다.
서울에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야생동물을 만나본다.
글 . 우동걸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영양소를 운반하고, 노폐물을 배출하고, 체내 항상성을 지켜 생명이 작동하게 한다. 우리 몸도 절반 이상 물로 이뤄져 있다. 물이 있는 곳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형성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도 큰물, 즉 한강 변에 자리 잡았다. 한강이 없는 서울은 상상하기 힘들다. 한강이 실어다 준 유기물로 쌓인 기름진 평야가 펼쳐졌고, 강을 따라 산과 바다의 물산이 모였기에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됐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 신라 모두의 사랑을 받은 한강이지 않은가.
강원도 태백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한강은 약 400km를 굽이굽이 흘러 서울에 닿는다. 서울 시계에 진입한 한강을 맞이하는 것은 거대한 도시의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다. 콘크리트 호안과 빌딩 숲, 도시화 고속도로가 강을 에워싼다. 소설가 김훈은 한강을 두고 “우리에 갇힌 맹수 같다”라고 표현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자연성을 잃어버린 한강이지만 습지와 하반림이 남은 녹색 공간을 한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서습지생태공원, 난지생태습지원, 샛강생태공원, 밤섬, 암사생태공원, 고덕수변생태공원이 그러한 곳이다. 이 소중한 자투리땅에서 야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류로부터 흘러온 영양분을 머금고 있는 한강 습지는 여러 생명을 품는다. 물억새, 버드나무, 갯버들, 갈대, 달뿌리풀 등 습지식물이 녹색 띠를 이룬다. 쇠기러기, 고방오리, 청둥오리, 비오리 등 철새들의 안식처이며 잉어, 숭어, 누치, 참게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강 변 습지는 육상생태계와 수생태계 사이의 전이대(Ecotone)로서 특유의 식생군락과 동물군이 먹고 먹히고, 경쟁하고 공존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 생태계 구성원 중엔 분류학적으로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포유동물도 있다. 포유류(哺乳類). 뜻을 풀어내면 젖을 먹고 자라나는 생물무리를 말한다. 한강이 서울시민의 젖줄이듯 야생 포유동물도 한강에 기대어 살아간다. 한강이라는 젖줄에 기대 살아가는 야생 포유동물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살쾡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삵은 호랑이와 표범이 사라진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양잇과 야생동물로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는 2021년 9월 암사습지생태공원에서 포착된 기가 막힌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귀 뒷면의 흰 반점, 복슬복슬한 꼬리, 이마에 난 검은 줄무늬. 때깔 좋은 삵이었다. 아직 다 자라진 않은 청소년기 삵이지만 포식자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암사습지 이외에도 서울 한강 변에서는 강서습지생태공원, 난지생태습지원에서 삵 서식이 확인됐다. 삵은 야행성동물로 낮에 휴식을 취하고 밤에 부지런히 활동한다. 낮에 시민들이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는 생태공원이 밤엔 삵의 차지가 된다. 야심한 밤중에 삵은 생태공원 탐방로를 활보하고 다닌다. 공원이라는 같은 공간을 두고 활동 시간 분화를 통한 시민과 야생동물의 공존이 이뤄진다.
삵의 주된 먹이원은 설치류다. 한강 변 습지는 산림 지역보다 오히려 설치류의 서식밀도가 높다. 한강 변 습지의 높은 생산성으로 인해 삵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설치류뿐 아니라 한강 수변 지역 삵의 식단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와 달리 삵은 물을 마다하지 않고, 습지에서 잉어나 개구리를 낚는다. 갈대밭에서 은밀하게 잠복하다 한순간에 습격해 꿩과 철새를 공략하기도 한다. 상위 포식자인 삵의 서식은 한강 변 습지 생태계의 건강성과 먹이사슬 구조의 안정성을 나타낸다. 즉, 삵은 도시 생태계의 지표종(Indicator Species)이라 할 수 있다. 인구 천만 대도시권에 삵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으웩~으웩~ 야심한 밤 습지에서 들려오는 괴성은 한강 변을 산책하는 시민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한 맺힌 자의 절규 같기도 한 이 소리의 주인공은 고라니다. 온순한 생김새와 달리 울음소리는 제법 우렁차다. 빽빽하게 우거진 습지나 갈대밭에서의 의사소통을 위해 발달한 발성법이다.
고라니는 전 세계적으로 한반도와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자연적으로 서식해 분포 범위가 넓지 않다. 중국 개체군 크기는 1만여 마리에 불과해 보호받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개체수가 약 70만 마리에 이르는 흔하디흔한 동물이다. 어쩌면 한반도를 대표하는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사슴과 동물이지만 정작 사슴의 상징인 뿔이 없다. 대신 수컷 고라니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고라니는 대표적인 로드킬 희생양이기도 하다. 해마다 전국 도로에서 생을 마감하는 고라니는 6만여 마리에 달한다. 일 년 중에서도 고라니 로드킬은 유독 5월과 7월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40%). 작년에 태어난 고라니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찾아 헤매는 때여서 도로 횡단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강 변 올림픽대로에서도 이따금 고라니 로드킬이 발생한다. 초여름 운전 시에 특히나 철저한 전방 주시와 안전속도 준수 노력이 중요하다.
고라니의 영어 이름 워터 디어(Water Deer)에서 알 수 있듯 고라니가 선호하는 서식지는 습지, 농경지, 하천 변 등 저지대 일대다. 탁월한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어 강을 건너가기도 하고, 바다에선 섬과 섬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서울 한강 변에는 갈대밭과 버드나무 하반림이 발달한 난지, 강서습지, 암사, 고덕생태공원에서 살아간다. 암컷 고라니는 겨울철 짝짓기 후 6개월간 뱃속에 품어온 새끼를 5월부터 낳기 시작한다. 어미는 단독으로 새끼를 낳고 기른다. 부단히 먹어야 젖이 나오므로 먹이 활동 시에는 새끼를 숨겨 놓는다. 초여름 한강습지 갈대밭에는 홀로 숨어 있는 새끼 고라니가 여기저기 박혀 있다. 혹시라도 홀로 남겨진 고라니 새끼를 발견한다면 그저 못 본 체 지나치면 된다. 조만간 어미가 젖 물리러 올 것이기에.
2016년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광진교 아래서 수달 한 마리가 발견된 것이다. 1997년 팔당대교 부근에서 마지막 수달 사체가 발견된 이후 19년 만의 귀환이었다. 기쁜 소식은 연이어 들려왔다. 2017년 탄천에서 어미와 새끼 3마리가 동시에 촬영됐다. 서울 한강에 수달 번식 개체군이 형성됐음을 알려주는 첫 사례였다. 2019년에는 서래섬에서 수달이 목격됐으며 이후 잇달아 샛강, 송내천, 청계천, 중랑천 등 한강 본류와 지류의 다양한 곳에서 수달이 발견되고 있다. 올해엔 좀 더 하류 쪽으로 분포 범위가 넓어져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도 서식이 확인됐다.
수달은 식육목 족제빗과에 속하는 포유동물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숲과 들이 아니라 강과 저수지 등 물을 끼고 살아간다. 몸길이의 3분의 2에 맞먹는 긴 꼬리는 물속에서 방향타 역할을 한다. 머리는 납작하고, 몸은 유선형으로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구조다. 다섯 개의 발가락 사이엔 물갈퀴가 있어 헤엄치기 좋다. 귀는 작고 콧구멍은 수중에서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다. 수달 털은 보온과 방수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두 개의 층위가 있어 겉 털은 방수를 위해 두껍고, 안쪽 털은 보온을 위해 촘촘하다. 입 주변에 난 수염은 물 흐름과 물고기 이동을 추적하는 레이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수달은 수중 생활에 최적화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달은 늦은 겨울~이른 봄에 짝짓기를 하며 임신 기간은 63~70일이고, 4~5월에 출산한다. 새끼는 평균 2마리 정도 낳는다. 어미는 새끼를 이듬해까지 데리고 다니며 물고기 잡기 맹훈련을 시킨다.
하천에서 주로 생활하고, 수영을 잘하는 만큼 수달의 먹이는 물고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블루길, 배스와 같은 생태계 교란종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 밖에도 양서파충류와 갑각류, 드물게는 수변에 사는 새를 사냥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달은 우리나라 하천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정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먹이사슬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의 역할을 담당한다.
과거 수달은 한강을 비롯한 전국 하천에 넓게 분포했으나 밀렵과 하천 정비 등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멸종위기 1급 생물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서울의 수달 귀환은 한강 생태계 회복을 알리는 청신호다.
하지만 한강에 수달이 돌아왔다고 해서 결코 긴장의 끈을 놓긴 이르다. 수달은 하천을 따라 생활하므로 생활 기반이 좁아 하천 생태계 교란에 취약하다. 한정된 서식 공간을 두고 종 내 경쟁도 치열하므로 서식밀도도 높지 않다. 거기다 수달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수달이 안정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은신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달의 은신처는 물가 하반림이나 바위틈의 은폐된 공간을 주로 활용한다. 콘크리트 제방이 다수인 서울시 한강 구간은 수달 보금자리가 부족하다.
한편 수달은 하천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만큼 생물농축에 취약하다. 화학물질 축적과 중금속 중독으로 생식력이 떨어지거나 폐사에 이를 수 있다. 최근 시민들이 발견한 한강 변 수달 똥에서는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일본에선 수달이 198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으며 결국 일본 환경성은 2012년에 수달 멸종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 학자들은 한국 수달 존재 자체를 부러워한다. “있을 때 잘하자”라는 교훈을 되새겨 봄 직하다.

(우) 강서습지생태공원은 한강 변 생물들의 서식처를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으로 방화대교와 행주대교 사이 한강 둔치에 있다
정작 우리는 잘 모르고 살지만 한국에 도착한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찬탄하는 것이 서울 산수의 아름다움이다. 멋들어진 화강암체 산과 유장한 흐름의 큰 강을 끼고 있는 인구 천만 대도시는 흔치 않다. 좀 더 욕심을 내 한강의 본래 모습을 되살리면 어떨까 싶다.
한강의 원형 경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진경산수화다. 진경산수화는 말 그대로 실재하는 경관을 그대로 표현하는 그림으로 개발 시대 이전 서울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다. 겸재 정선은 양수리에서 행주에 이르기까지 한강의 풍경을 27점의 화폭에 남겼다. 그림에 표현된 한강의 모습은 하폭이 현재에 비해 좁으며, 대신 넓은 모래톱이 펼쳐져 있다. 본래 한강은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며 구불구불 흐른 자유곡류 하천이었다. 멋들어진 공격사면 단애와 활주면 넓은 모래 언덕, 하중도가 곁들어진 모래 강이었다.
한강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한 가장 필요한 조치는 종과 횡으로 한강을 가로막는 보와 콘크리트 호안을 거두는 것이다. 수위를 원래대로 낮추고 퇴적 공간을 살리면 강은 스스로 부단히 모래를 실어와 자신의 본래 모양과 위치를 찾아갈 것이다. 강모래 고운 백사장이 다시 자리를 잡고 수변림이 되살아날 것이다. 강수욕 인파가 찾았던 뚝섬 일대 비단 모래톱은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민물도요와 꼬마물떼새가, 황복과 웅어가, 재첩과 말조개가 돌아올 것이다.

모래톱에는 족제비, 고라니, 삵, 너구리, 수달이 저마다 발자국을 찍고 다닐게다. 물론 한강 생태계복원 실행에 있어 많은 이해관계와 충돌할지도 모른다. 유람선 운행과 수상스포츠 활동이 제한될 수 있다. 수중보 철거로 예상되는 유량과 취수량 변화에는 세심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여러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한강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한 논의와 노력은 분명 미래 세대를 위해 필요하다.
최근 고무적인 소식은 야생동물을 돌보는 시민들의 노력이다. 달수클럽, 수달언니들, 달달이 등 자발적인 시민모임이 한강과 지류하천의 수달과 야생동물 서식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서식지 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년에는 시민, 환경단체들이 모여 수달이 함께 사는 서울을 만들기 위한 ‘서울수달네트워크’가 출범하기도 했다.
야생동물과의 공존 모색과 한강 재자연화를 통한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