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조우한 채식
우리는 그동안 ‘운동 효과를 높이려면 고기로 단백질 보충을 해야 한다’는
문장을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 왔다. 그런데 최근 채식으로 경기력이 향상됐다는
프로 운동선수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관련 책, 다큐멘터리, 논문 등이
속속 나오면서 운동과 채식의 만남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글 . 강진우
닭가슴살, 계란, 유청 단백질 보충제, 지방을 걷어 낸 붉은 살코기.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단백질을 끼고 산다.
운동을 취미로 즐기거나 거의 하지 않는 사람들도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을 향해 “너 그러다 힘 없어서 쓰러져”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툭툭 던지곤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단백질 보충이 중요한 프로 운동선수들 중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울러 이들은 채식 후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향상된 경기력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올해 SSG 랜더스의 KBO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한 만 38세의 백전노장 투수 노경은 선수는 2020년 초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투수코치의 권유로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The Game Changers)>를 시청한 것이 그 계기.
그는 채식과 더불어 유제품과 달걀까지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으로서 엄격하게 식단 관리를 했으며,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중요한 선발투수 자원으로 활약했다. 올해 SSG 랜더스로 이적한 뒤에도 12승 평균자책점 3.05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 운동선수도 채식이 가능하며 나아가 경기력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아스팔트 대신 산길, 초원, 사막 등 자연의 길을 뛰는 스포츠인 트레일러닝의 자타 공인 국내 1인자 김지섭 선수는 열량 높은 음식을 섭취한 후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을 몸소
느낀 뒤 2019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채식에 돌입했다. 이후 2022년 6월까지 국내 모든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세계 최고 대회인 프랑스의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UTMB) 순위권 입상을 목표로 채식과 함께 열심히 달리고 있다.
채식주의 운동선수 사례는 해외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테니스 스타 자매 세레나‧비너스 윌리엄스, 포뮬러원의 황제 루이스 해밀턴, 프리미어리그를 거쳐 현재 AS로마에서
뛰고 있는 크리스 스몰링 등 각 종목 최상위권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채식을 실천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결국 정답은 ‘나에게 맞는 식생활’
우리 머릿속에는 ‘육식=단백질=힘’이라는 공식이 새겨져 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의병원 슬관절센터장이자 채식을 권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 모임인 ‘베지닥터’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송무호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를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장거리 운동선수들은 에너지원을 근육에 저장하기 위해 시합 며칠 전부터 고기보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 카보로딩(Carbo-Loading)을 실행한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은 단백질이 아니라 탄수화물이기 때문. 근육 형성에 필요한 단백질도 식물성 원료로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다고 지적한 그는 “채식을 하면 혈관이 깨끗해지고, 심폐 기능이 향상되며, 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어 운동 능력이 더 향상된다”며 채식이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일상생활과 운동의 충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준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에도 채식의 강점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우리가 단백칠을 섭취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아미노산 때문인데 아미노산은 콩과 같은 식물단백질에도 풍부하기에 굳이 동물단백질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기에는 N-글리콜리뉴라민산‧내독소‧헴철과 같은 염증성 분자로 구성된 단백질이 함유돼 있는 반면 식물단백질에는 염증을 줄이고 미생물 군집,
혈액 공급, 신체 기능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항산화제‧파이토케미컬‧미네랄‧비타민 등이 들어 있다는 점도 채식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고 이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전문가는 균형적 대사, 근육 및 면역 세포 형성 등을 위해 동물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육식과 채식 중
어느 하나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시대는 지났다며 건강을 위해 채식을 위주로 하되 상황에 맞게 육식도 병행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식사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설왕설래가 많다는 것은 결국 식생활에는 왕도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운동과 병행하며 활기찬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것이 바로 나에게 맞는 식생활이다. 그러니 당장 오늘부터 음식에 대한 몸의 반응에 좀 더 귀 기울이며 이것저것
고루 먹고 몸을 움직여 보자. 내 식생활의 정답은 바로 그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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