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도
무너지지 않는
수면 전략
무더운 여름철, 에어컨을 틀어도 좀처럼 식지 않는 밤 공기에, 침대 위에서 뒤척이거나, 수면 중간중간 깨어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문제는 이 수면 방해가 단순히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면 부족은 단기적으로는 집중력 저하와 감정 기복, 장기적으로는 만성 피로, 면역력 저하,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열대야 속에서도 나의 수면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본다.
글.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녁이 되면 심부 체온이 내려가면서 우리 몸의 호르몬과 신경계는 수면에 적합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한낮의 더위와 이어지는 열대야는 자연스러운 체온 하강을 방해한다. 게다가 여름철 높은 습도는 땀의 증발을 어렵게 만들어 몸의 열 배출 기능을 제한하고 피부 표면이 끈적이고 불쾌한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자극은 입면을 어렵게 하고 수면 중 여러 차례 각성을 유도하여 수면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온도만큼 중요한 요인이 일조량의 변화이다. 우리 몸에는 시교차상핵이라는 생체시계가 있어서, 어두워지면 잠이 오게 만드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나오도록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고 늦게까지 밝은 상태가 유지되면서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감소한다. 그러면 밤잠이 깊지 않거나, 새벽에 너무 일찍 깨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여름철 수면 문제는 단순히 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햇빛과 관련된 생체리듬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이해하면 여름철 불면증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방의 온도가 아니라 ‘몸의 열’을 낮춰야 한다. 여름밤에 만족스러운 수면을 이루기 위한 핵심은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다. 단순히 실내를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자연스러운 냉각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깥이 덥다는 이유로 과하게 실내 온도를 낮추면 오히려 자율신경의 과도한 자극, 근육 경직, 호흡기 자극 등을 유발하여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에어컨으로 실내 온도를 적정선(25~26도)으로 유지하고, 선풍기로 공기를 순환시켜 피부 표면의 땀과 열을 날려주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저녁 샤워는 찬물보다는 미온수를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적당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혈관이 확장되며 체내 열이 피부로 배출되기 쉬워져 체온이 서서히 떨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수면 준비 상태로 전환된다.
뇌와 몸이 ‘잘 준비된 밤’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여름철에는 해가 늦게 지고 활동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수면 루틴이 밀리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루틴화된 수면 환경이 필요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가벼운 스트레칭, 독서, 차 한 잔, 명상 등의 수면 루틴을 형성하면 뇌는 이를 수면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을 부드럽게 유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수면 전 조명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으며 잠자리에 들기 1시간 전부터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 밝은 화면을 멀리해야 한다, 햇빛 노출에 민감한 사람은 작은 빛에도 숙면을 방해 받을 수 있다. 이럴 때는 암막 커튼이나 수면 안대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운동은 불면 해소에 가장 검증된 방법이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수면을 깊게 만들어준다. 운동을 할 때는 체온이 오르지만 일정 시간 이후에는 오히려 체온이 떨어지면서 수면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한낮의 야외 운동은 햇빛에 대한 노출을 증가시켜 멜라토닌 생성을 촉진시키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3~6시간 전에 하는 운동이 수면에 가장 효과적이며 잠들기 3시간 이내에 하는 운동은 각성을 유발하여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아침 혹은 이른 저녁의 가벼운 조깅과 같은 유산소 운동이 체내 리듬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여름밤마다 잠과 씨름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몇 가지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한결 편안한 밤을 만들 수 있다. 몸의 리듬에 귀 기울이고, 계절에 맞는 수면 환경을 만들어보자. 뜨거운 햇살 아래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시원하고 평온한 밤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올여름도 충분히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 정희주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서울역마음정신과의 대표원장이자 동시에 정신의학신문에서 활동 중인 칼럼니스트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며 일상 속 마음의 균형과 회복을 돕고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