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을 빛내는
‘스포츠’라는 에너지

< 워너 브롱크호스트 : 온 세상이 캔버스>

짙은 녹색 잔디밭 위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 파란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사람들, 새하얀 설원 위로 스키를 타고
미끄러지는 사람들…. 그러나 이곳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가 캔버스에 옮겨 담은
활력 넘치는 예술의 세계로 초대한다.

글. 조수빈    사진제공. ㈜미디어앤아트


낯선, 그러나 익숙한 풍경을 만나다

요즘 사람들의 ‘선택’에는 감각, 감성, 취향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남길 수 있거나, 그것과 함께했을 때 ‘느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한 전시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진행 중인 전시 <워너 브롱크호스트 : 온 세상이 캔버스>가 그 주인공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호주 작가 워너 브롱크호스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통해 인스타그램 110만 팔로워를 보유한, 한마디로 현대 미술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익숙함’에 있다. 그의 작품 속 풍경은 공원, 바닷가, 수영장, 골프장 등 모두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반면 표현 방법은 낯설다. 브롱크호스트의 터치는 과감하고 거칠다. 물감을 고르게 펼치기는커녕, 물감이 두터운 대로, 붓자국이 불규칙한대로 둔다. 그렇게 캔버스 위에 남은 질감은 파도가 되고, 잔디가 되고, 아스팔트가 된다. 그의 작품에서 배경은 이토록 거칠고 광활한 반면, 그 속의 인물들은 작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법은 작가의 어린 시절 영향이 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드넓은 대자연 속에서 살았던 영향이 작품으로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곁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사람들도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세상은 하나의 캔버스이고, 우리는 그 안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스포츠로 자연을 만끽하다
  •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은 그의 작업 공간을 재현해 둔 ‘THE LAB’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에서 현재까지 확장되어 온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공간 ‘LIFE ON CANVAS’에서는 그의 대표 기법인 마티에르 기법(재료 고유의 질감을 살리는 방식)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태양이 내려쬐는 파도를 즐기는 서퍼, 눈부신 설원 위를 질주하는 스키어나 보더 등 자연 위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물감이 두텁게 쌓인 부분은 높은 파도가 되거나 폭신한 눈이 되고, 옅게 남은 붓자국은 마치 스포츠의 에너지와 생동감을 더한다. ‘FORBIDDEN GRASS’에서는 골프, 테니스, 하이킹 등 ‘초록’ 하면 떠오르는 스포츠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곳은 실제 골프장과 테니스장처럼 꾸며두었는데, 초록색 인조 잔디를 밟으며 예술의 경계를 넘어 실제로 작품 속에서 함께 스포츠를 즐기는 듯한 몰입감을 부여한다. 작품의 해석을 강요하기보다는 관람객 스스로 감각을 깨우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WET’은 마치 수영장에 들어온 듯 청량한 풍경이 관객을 맞이한다. 캔버스 속에서는 짙은 바다 속을 유영하는 다이버, 푸른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서퍼, 튜브에 올라타 물결에 몸을 맡긴 사람들까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물속에서 자유를 찾고 있다. 여기에는 자유로움과 동시에 왠지 모를 고요함이 느껴지는데, 작가가 물에서 깨달은 삶의 고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간은 바로 작가의 미공개 대표작을 선보이는 ‘EVERY MOMENT’인데, 그가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들도 있다. 그가 해석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면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가 그려낸 독창적인 세계 속에서 이 여름을 이겨낼 에너지와 색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