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어선
클라이밍의 세계로
서채현 선수X서울시립대 산악부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알록달록한 볼더들. 같은 색의 볼더만 잡은 채 가장 정상의 볼더에 닿는 과정을 클라이머들은 ‘문제를 푼다’라고 말한다.
서울시립대 산악부가 한 문제 앞에 섰다. 답을 향해 가는 과정에 클라이밍 국가대표 서채현 선수가 함께했다. 더 쉽게, 더 높이 닿기 위해 이들이 함께 땀 흘렸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글. 조수빈 사진. 황지현 영상. 이덕재

계절의 경계에서 봄과 여름이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던 5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서울 영등포구의 한 클라이밍장에 서울시립대 산악부 회원 다섯 사람이 방문했다. 운동복을 입은 채 한 손에는 암벽화, 초크 등 클라이밍에 필요한 준비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체육인’의 모습이지만 표정에서는 왜인지 ‘비장함’보다 ‘수줍음’과 ‘설레임’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이곳에서는 클라이밍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서채현 선수의 원데이클래스가 진행될 예정이다.서울시립대 산악부는 세계적인 산악인 故김창호 대장을 배출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대학 산악부 중 이름난 곳이다. 오늘 수업에 참여한 다섯 명의 학생들 또한 실내 암벽장은 물론 실외 암벽 등반, 등산 등 두 팔과 다리로 거침없이 오르며 선배의 길을 쫓고 있다. 이들 중 경력이 가장 오래됐다는 김채윤 씨는 “동호회 활동으로 처음 클라이밍을 접했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짧고 굵게 운동할 수 있다는 점과 퀘스트를 깨듯 문제를 풀며 느끼는 쾌감이 좋아요. 그 성취감에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벌써 2년 차가 되었어요!”라며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들의 두 팔과 다리에 붙은 탄탄한 근육들이 클라이밍에 대한 이들의 애정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서채현 선수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려 왔단다. 가장 늦게 등장한 최준 씨가 “동호회 회장인 선규 형이 서채현 선수님의 원데이클래스 소식을 알려 주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늦잠을 잔 거예요. 그래도 수업에 늦을 수 없으니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왔어요. 이 소중한 기회를 조금이라도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라며 부랴부랴 수업 들을 채비를 시작했다.

수업에 앞서 궁금한 게 많다며 운을 뗀 김동찬 씨. “세계 1등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거든요. 평소 클라이밍을 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혹시나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다 적어왔어요.”라며 질문을 빼곡하게 적어두었던 스마트 메모장을 켰다.그의 메모장에는 클라이밍 기술부터 실내 클라이밍과 실외 암벽과의 차이, 힘을 빼는 노하우까지 그야말로 ‘클라이밍의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부상으로 아쉽게 수업을 들을 수 없었던 이선규 씨는 “운동선수로서 부상을 피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부상을 줄이기 위한 팁은 무엇이 있나요?”라며 아쉬움을 담아 질문했다. 서채현 선수는 “저는 절대 무리하지 않아요. 운동을 하다 보면 ‘이 이상은 힘들 것 같은데?’라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럴 때 괜히 도전했다가는 부상으로 이어지기 쉬워요. 몸을 사리면서 운동을 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해요.”라며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했다. “훈련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며 쉬세요? 훈련이 없을 때는 어떤 운동을 하는지 궁금해요!”라며 팬심을 담은 질문도 있었다. “훈련이 없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요. 운동을 해야 된다 싶을 때는 짧게 유산소 정도 하는 것 같아요.”라며 서 선수가 가볍게 대답했다. 봇물 터지듯 쏟아냈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이제는 수업을 재촉하는 학생들. 수업에 앞서 몸을 푸는 동안 저마다 서채현 선수와의 완등을 꿈꾸는 듯 표정이 한층 비장해졌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짧고 굵게 운동할 수 있다는 점과 퀘스트를 깨듯 문제를 풀며 느끼는 쾌감이 좋아요.
그 성취감에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벌써 2년 차가 되었어요!”
-
오늘 수업에서는 ‘기초’를 위주로 배워볼 예정이다. “동호회로 처음 운동을 접하는 분들은 대체로 기초지식을 쌓기 전에 일단 몸으로 부딪혀 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게 쌓는 실력도 좋지만 어떤 운동이든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클라이밍의 기본자세인 ‘삼지점’과 ‘드롭니’에 대해 알려 드리려고 해요.” ‘삼지점’은 손과 두 발의 위치를 삼각형 모양으로 만드는 자세로 클라이밍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세이다. 이때 무게중심을 잘 잡는 것이 포인트인데, 삼지점을 잘 잡아야 홀드 간 이동을 할 때 힘을 덜 쓰게 된단다. ‘드롭니(Dropknee)’는 한 자리에서 버티거나 다음 홀드로 이동할 때 몸을 벽에 가까이 붙이고 중심을 낮춰 안정성을 더하는 기술을 말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서채현 선수가 직접 시범을 보이기 위해 홀드를 잡았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의 아우라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서 선수에 이어 학생들이 한 사람씩 벽에 올랐다. 서 선수가 짚어주는 홀드로 하나씩 위치를 옮기는 동안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고, 힘을 덜 쓰거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팁 등을 아낌없이 배울 수 있었다.
-
“앞으로는 팬으로서 서채현 선수가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나아가 오래오래 우리나라 대표로서 빛나길 응원하겠습니다!”

-
끝까지 눈을 반짝이던 전종훈 씨는 “언제 어떤 기술을 써야 하는지 구체적인 예시와 루트를 알려주셔서 좋았어요. 제가 알고 있는 기술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몰랐거든요. 덕분에 끝까지 완등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들 중 고숙련자에 속하는 조정래 씨는 “그동안은 팔의 힘에 의존해서 클라이밍을 했었는데, 다리로 힘을 분배하는 법을 배웠어요. 삼십 분가량 운동을 했는데 평소보다 팔에 펌핑도 덜 됐어요. 정말 신기해요! 역시 세계 리드 1등의 가르침은 다르네요.”라며 “앞으로는 팬으로서 서채현 선수가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나아가 오래오래 우리나라 대표로서 빛나길 응원하겠습니다!”라며 웃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클라이밍에 힘이 빠질 법도 한데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는 이들의 모습에 수업이 마무리되는 게 아쉽게만 느껴졌다. 서채현 선수와의 인증샷까지 남기고 나서야 박수로 수업을 끝낸 이들. 이 아쉬운 마음은 앞으로의 ‘클라이밍 라이프’로 이어가기로 한다. 이들이 두 팔로 오른 곳에서 만날 세상이 궁금해졌다. 땀방울마저 달콤하게 느껴질 그런 세상일 것이다.
-
서채현 선수는 2019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리드 종목 2위를 하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2020 도쿄올림픽, 2024 파리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이번 2025 IFSC 스포츠클라이밍 우장 리드·스피드 월드컵에서 리드 부문 공동 1위에 오르며 다섯 번째 월드컵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