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레전드를 찾아서

한국 축구가 세계와 견줄 만한 수준까지 오른 지 오래.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많은 가운데, 그중 최고는 누구일까.
독자들과 박문성 해설위원이 나름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다. 일등 선수는 만장일치로 차범근 선수가 올랐다. 그렇다면 나머지 순위는 어떻게 될까?

글.   박문성

01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차범근

차범근 이후의 모든 선수들은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차범근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상징성. 차범근은 없던 길을 만든 사람이다. 한국 선수가 축구의 땅 유럽에 진출하는 걸 꿈조차 꾸지 못했던 시절, 상상을 현실로 뒤바꾼 인물이다.
둘째는 실력. 당대 최고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외국인 선수 최다골(98골)을 때려 넣었다. 무려 11년간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다. 이 기록은 컵 대회 등을 전부 제외한 순수 리그에서만 기록한 수치다. 국가대표로서도 차범근은 위대했다. 1976년 말레이시아전에서 기록한 7분 해트트릭 전설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역대 최다 출전(136경기)과 최다골(58골) 등 차붐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아로새긴 기록은 찬란하다.

  • 02 한 선수의 빛나는 기록
    손흥민

    개인 성취만 놓고 본다면 손흥민을 역대 1등으로 올려놓았을 것이다. 손흥민이 써 나가고 있는 역사는 그 누구도 다시 쓸 수 없는 불멸의 것이다. 전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그곳에서 한국 선수가 주전으로만 뛰어도 박수칠 일인데 득점왕이라니, 그걸 해낸 인물이 손흥민이다.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 역사를 통째로 따지더라도 손흥민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고작 15명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프리미어리그 최다골의 주인공이며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프리미어리그 최다골 16위에 빛나는 역사다. 챔피언스리그 아시아 역대 최다 득점자, FIFA푸스카스상, 발롱도로 11위 한국 축구 역사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성취의 주인공이다. 우승이 없는 게 한탄스러울 뿐이다.

  • 03 해외 축구의 아버지
    박지성

    차범근이 개척한 한국 축구 유럽 도전사를 본격화한 인물이 박지성이다. 박지성의 맨유에서의 성취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선수들도 유럽축구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입증이었다. 한국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거가 된 박지성은 아시아 최초이자 최다 프리미어리그라는 우승이라는 성취를 거두었다.
    QPR로 이적해서는 프리미어리그 최초 아시아 주장을 맡았다. 박지성은 특히 강한 상대와 맞설 때 진가가 빛났다. 국가대표로도 마찬가지였는데 월드컵에 나섰던 3번의 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었던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 독일월드컵 프랑스전,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 등 모두 유럽팀을 상대로 골을 터트리며 진정한 빅 플레이어가 무엇인지를 증명해 보였다.

  • 04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원석
    이강인

    경기장을 네비게이션으로 훑어보듯 꿰뚫는 시야와 시퍼런 칼처럼 수비 사이를 갈라놓는 패스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나이가 만 24세라는, 축구선수의 전성기 구간으로 진입하기 전이라는 걸 감안하면 어느 레벨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되고 흥미롭다. 이강인은 등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슛돌이 시절은 차치하더라도, 201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보여 준 그의 존재감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쟁쟁한 상대들을 연달아 꼬꾸라뜨리며 남자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스페인 발렌시아, 마요르카를 거쳐 프랑스 명문 파리에서 뛰고 있는데 소속팀만 제대로 만난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보여 줄 게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 05 필드 위 강렬한 인상
    김주성

    긴 머리카락에 수려한 외모가 탁월한 실력과 겹쳐지면서 당대 축구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야생마’, ‘삼손’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다. 김주성은 미드필더, 수비수 할 것 없이 커리어 내내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 K리그 역사상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베스트11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다.
    김주성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는 소속팀 부산 대우로얄즈가 구단 역사상 최초로 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럽 무대 도전 실패와 월드컵 부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은 대표팀 전체의 부진과 맞물리면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으며 독일 보훔에 진출해서는 무릎 부상 등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글을 쓴 박문성은 1990년 월드축구 기자를 시작으로 스포츠미디어 편집장, 해설위원을 거친 축구 전문가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 ‘달수네 라이브’를 운영하며 73만 구독자들에게 축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