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의 적막…
과도한 민원과 책임에 위축되는 체육 교육

학교 운동장이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승패를 가리는 대신 무승부로 처리하고, 뛰고 부딪히는 체육활동은 줄어들며,
교사들은 사고 발생 자체보다 그 이후 이어지는 민원과 책임 추궁을 더 두려워한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변화가 어느새 아이들의 성장 기회와 교사의 교육활동까지 함께 위축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글. 김세훈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승패를 지운다고 ‘패배’가 사라질까

일부 학교는 달리기와 줄다리기 결과로 벌어진 청팀과 백팀 점수 차이를 ‘응원 점수’와 ‘질서 점수’로 메워 무승부를 만든다. 달리기 등수를 표시한 도장도 없앴다. “아이가 지고 돌아와 속상해한다. 패배감을 주지 말라”는 학부모 민원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소음 민원도 잇따른다. “시끄럽다”는 신고가 접수돼 순찰차가 운동장에 출동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전국 학교 운동회 관련 112 신고는 350건이었고, 이 가운데345건에 경찰이 실제 출동했다. 운동회를열기 전에 이웃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사과문부터 학교 담벼락에 붙이는 상황까지벌어진다.
학부모들의 상충하는 요구도 교사를 난감하게 한다. “아이가 땀을 많이 흘리니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달라”는 요구와 “감기에 걸릴수 있으니 찬바람을 쐬게 하지 말라”는 요구가 동시에 들어온다. 학교는 서로 충돌하는 요구 사이에서 가장 민원이 적은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학생이 공에 맞거나 넘어져 다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학교안전공제회가 치료비를 보상하더라도 사고 경위 확인과 민원 응대, 감사 요구, 형사 고소 가능성은 교사가 떠안는다. 축구와 농구, 피구, 높이뛰기, 허들 대신 걷기와 스트레칭, 보드게임 등을 선택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모두 참여하는 축제형 운동회도 충분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운동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소외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교육적 판단에 따라 승패를 없애는 것과 민원을 피하려고 실제 경기 결과를 무승부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이들은 경쟁을 통해 이기는 법만 배우지 않는다. 규칙을 지키는 법, 자신보다 잘하는 친구를 인정하는 법, 진 뒤에도 상대에게 박수를 보내는 법을 배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하는 경험도 얻는다. 패배의 충격을 없애주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작은 실패를 안전하게 경험하고 그 감정을 견디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교육에 가깝다.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고 그 이후

학교 체육이 위축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고 자체보다 사고 뒤에 이어지는 책임 추궁이다. 한 체육교사는 “학교안전공제회가 치료비를 처리해줘도 교사들은 직후부터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과 사후 대응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체육수업을 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시대”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나 농구도 경기가 조금격렬해지면 충돌 사고가 날까 노심초사한다” 고 토로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학교안전사고20만 592건 가운데 체육활동 중 사고는 7만5,475건으로 37.6%를 차지했다. 체육은 본질적으로 움직이고, 달리고, 부딪히며 배우는 교육이다. 사고 가능성을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한 예방은 불가능하다.체육교사들이 반복해서 지적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안경 파손이다. 축구나 농구 경기 중 안경이 부서지는 일은 흔하지만, 신체 부상과 달리 안경이나 옷, 휴대품 등은 공제회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교사가 학부모 사이에서 중재와 민원 대응까지 감당하게 된다.

현장을 지키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체육교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안전교육과 시설 점검, 준비운동과 학생 상태 확인 등 교사가 해야 할 의무는 당연히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필요한 조치를 모두 했는데도 발생한 우발적 사고까지 교사 개인의 과실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은 2025년 개정을 통해 학교장과 교직원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면책 조항을 마련했다. 그러나 무엇을 ‘안전조치를 다한 것’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여전히 부족하다. 수업 전 안전수칙을 어느 정도 설명해야 하는지, 학생 수에 따른 보조 인력 기준은 무엇인지, 축구 경기에서 어느 수준의 접촉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세부 매뉴얼이 없다.
정부와 교육청은 종목별·상황별 표준 안전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교사가 이를 준수했다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교육청의 법률지원단과 분쟁조정기구가 즉시 개입하고, 학교도 승인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조직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관리자가 “담당 교사가 알아서 해결하라” 고 물러서는 구조는 개선되어야 한다. 반대로 교사 역시 제도적 보호만 요구할수는 없다. 수업 전 안전교육과 위험요소 점검을 충실히 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표준 매뉴얼은 교사를 통제하는 문서가 아니라 제대로 수업한 교사를 보호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아이는 학교·가정·지역사회가 함께 키워야 한다

학교는 한 아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한 학생이 경기에서 졌다고 승패를 없애고, 한 번 다쳤다고 종목을 폐지하며, 한 가구가 시끄럽다고 운동회를 실내로 옮긴다면 다른 아이들이 교육받을 권리도 침해하게 된다. 학교도 사고 경위와 조치 내용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학부모 역시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책임자를 찾기보다 안전수칙이 지켜졌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역사회도 학교를 소음과 불편만 유발하는 시설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과거 학교 운동장은 주민들과 함께 쓰던 공동체 공간이었다. 학생 안전을 위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아이들의 함성과 운동회가 공동체 문화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전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안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 아이들은 도전할 기회를 잃는다. 달리다 넘어질 수 있으니 달리지 않고, 부딪힐 수 있으니 공놀이를 하지 않으며, 질 수 있으니 승부를 가리지 않는 학교가 과연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학교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경험하고 실패와 부상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패배와 부상을 없애주는 학교가 아니라, 안전하게 도전하고 정당하게 경쟁하며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