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을 정리하며
파리올림픽이 끝났다. 한국은 적은 선수단으로도 선전했고, 파리는 종합대회의 모범사례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그들이 추구했던 ‘저탄소’와 ‘양성평등’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해 정리해봤다.
글. 정다워
한국은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를 목표로 설정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 스포츠의 저력은 우려보다 강했다. 사격과 양궁, 펜싱, 태권도, 유도, 배드민턴, 탁구, 수영, 근대5종, 역도, 복싱 등 총 11개 종목에서 메달이 쏟아졌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 등 총 32개의 메달이 나왔다. 가장 많은 메달을 얻은 1988 서울올림픽 33개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역대 최고의 대회였다는 평가도 과하지 않다.
일각에선 예측에 실패한 대한체육회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선전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국은 48년 만에 가장 적은 144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엘리트 체육의 약화와 정책적 오류 등으로 인해 3년 전 도쿄 대회보다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외신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파리 현장에서 목격한 한국 선수단 선전의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노력과 달라진 자세다. 과거 한국 선수들은 과도한 애국심과 책임감에 시달리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경기 후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제 정서가 달라졌다. 성적에 아쉬움을 느끼거나 가족, 스승 생각에 우는 선수는 있었지만, 나라에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선수는 본 기억이 없다. 21세기에 태어난 어린, 혹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태극기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더 이상 애국, 충성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다. 체육계라고 다를 것은 없다. 20대 초중반의 선수들은 이제 나라가 아닌 개인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뛴다. 기성세대와 비교하면 부담을 느끼는 수준이 다르다. 그저 “즐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회를 준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태극기를 아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장에 걸린 태극기는 선수들을 더 뛰게 하고 힘나게 하는 확실한 원동력이었다. 개인의 욕망과 애국심이 적절하게 융합될 때, 기량은 100%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회였다.
저비용 고효율 롤모델을 제시한 파리
파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마스터카드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파리는 방문자가 가장 많은 도시 2위였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랜드마크다. 에펠탑을 비롯해 센강, 앵발리드 등 여러 명소를 보유한 곳이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센강 전체에서 개막식을 열었고, 에펠탑 앞에서는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렸다. 묘지와 예배당, 군사 박물관, 대형 정원, 그리고 알렉상드르 3세 다리로 이어지는 앵발리드에는 양궁장을 설치했다. 1900년 세계박람회가 열렸던 그랑 팔레에서는 펜싱, 태권도 경기가 열렸다. 단순히 경기를 넘어 경기장까지 즐기게 만드는 종합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선보인 셈이다.
파리올림픽이 남긴 최대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불필요한 토목 공사를 하지 않아도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종합대회의 폐해를 제대로 확인한 대회였다. 시설 건설에만 무려 약 1조 5,000억 원을 투입한 인천시에는 지금도 쓰지 않는 경기장이 흉물처럼 남아 있다. 명백한 예산 낭비다.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가 확보된 한국 정도의 국가에서 굳이 종합대회를 유치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결과다.
파리는 달랐다. 거의 모든 종목 경기장은 가변석으로 구성됐다. 조립식 철골 구조물로 관중석을 만들었을 뿐이다. 대회를 마치면 간단히 해체해 기존 건물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실제 경기장에서 대회가 진행된 것은 축구, 농구, 배드민턴 등 극소수 종목에 불과했다. 저비용 고효율의 전형이었다.
파리 대회는 앞으로 종합대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모범 사례였다. 대규모 토목 공사 없이도 대회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올림픽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는 서울시에서 꼼꼼하게 벤치마킹해야 할 것들이 파리에 있다.
파리올림픽은 역대 최초로 남녀 성비를 맞춘 ‘양성평등’ 대회를 지향했다. 사실 종합대회에서 남녀 차별을 느끼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국내 미디어에서도 메달 색깔에 비중을 둘 뿐 성별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복싱에서는 성별 논란이 문제가 됐다. 대만의 린위팅과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 두 명의 금메달리스트가 성별 논란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낳았다. 조직위원회는 큰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대회에 참가한 다른 선수들의 반발이 심했던 만큼 다음 대회부터는 더 꼼꼼한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대회 최대 이슈는 저탄소 발자국 지우기 정책이었다. 탄소를 줄이겠다며 선수단 숙소, 버스 에어컨을 끄는 등 극단적 정책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몇 년간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의 경기력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논란이 됐다.
현장에서는 조직위원회의 정책에 공허함을 느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탄소를 줄이겠다면서 개막식에 디젤 엔진으로 굴러가는 선박을 100대 가량 띄웠고, 코카콜라 플라스틱 컵 600만 개를 배포하는 등 무의미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저탄소가 그 정도로 중요하면 차라리 올림픽을 아예 개최하지 말았어야 한다’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올림픽 본연의 의미는 경기 그 자체에 있다. 선수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보다 올림픽에서 중요한 가치는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주객이 전도되는 듯 한 느낌을 받아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