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의
스포츠 공간

고대 그리스인들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갖춘 ‘칼로카가티아’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다.
고전 그리스의 문화가 태동하던 기원전 8세기경부터 신체 능력의 빼어남을 겨루는 일이 신들의
성소가 있는 곳에서 축제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글+사진 .  김혜진

축제와 성소

고대 그리스 성소는 신을 숭배하기 위해 마련한 성스러운 공간으로 단순한 제단이나 사당만 세워진 협소한 곳이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와 지중해 곳곳에서 온 순례자와 여행자, 운동선수를 모이게 한 범그리스 성소는 다양한 기능을 갖춘 시설이 들어선 복합 공간이었다. 가장 이른 시기부터 운동경기가 열린 성역은 제우스의 성소가 위치한 올림피아다. 기원전 776년경에 달리기 경주를 시작으로 열렸다가 그리스 세계 전역으로 참가자가 확대되고, 경기 종목이 늘어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올림피아제전은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서기 393년에 폐지될 때까지 천년이 넘도록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제였다. 이는 아폴론의 성소가 있는 델포이의 피티아 제전, 포세이돈을 모신 이스트미아 제전, 제우스를 모신 네메아 제전이 탄생하는 데 자극제가 됐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인들은 올림피아제전처럼 4년마다 국제적인 행사인 대(大)판아테나이아 제전을 만들었다. 대(大)판아테나이아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폴리아스를 기리는 축제로 매해 아테나 여신의 탄생일이 있는 헤카톰바이온(Hekatombaion) 달의 끝인 8월 15일경에 시작해 8일간 열렸다. 대(大)판아테나이아에는 음악 경연, 운동경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특히 운동경기가 열린 아테네의 스포츠 공간들은 도시의 안팎 곳곳에 위치했고 덕분에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도시 전체를 축제 분위기로 고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원전 6세기경에 처음 건축된 아테네의 판아테나이아 스타디온은 기원전 330년경과 서기 144년에 석재로 재건됐다.
이후 1896년 제1회 아테네 근대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경기장으로 사용됐다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이 소장한 암포라로 판아테나이아 경기 우승자에게 주어졌다.
한 면에는 선봉장 아테나(Athena Promachos)가 그려지고 다른 면에는 해당 종목이 묘사된다

대(大)판아테나이아의 경기 종목과 경기장

기원전 4세기, 대(大)판아테나이아의 운동경기는 나체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육상경기와 마상 경기, 해상 경기로 나눠진다. 육상경기 가운데 한 범주는 올림피아의 운동경기와 동일한 종목으로 이뤄졌고 모든 그리스인이 참여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해당했던 종목은 달리기 종목인 스타디온, 스타디온의 두 배 거리를 달리는 디아울로스, 장거리 경주, 군무를 갖추고 달리는 경주다. 또한 레슬링, 권투, 판크라티온의 격투기 종목과 멀리뛰기, 달리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를 겨루는 오종경기도 포함됐다. 다른 한 범주는 아테네인만이 참여하도록 제한된 종목으로 약 2.5km의 거리를 횃불을 들고 여럿의 주자가 이어서 달리는 경주, 군장을 갖춘 남성들의 군무 경연, 신체와 인격이 훌륭한 남성을 뽑는 에우안드리아가 있다.

마상 경기는 올림피아 경기 종목이었으며 대(大)판아테나이아에서도 경마와 전차 경주가 열렸다. 그리고 무장한 군인이 마부가 모는 마차에 탑승해 달리는 마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마차로 뛰어오르는 아포바테스가 추가됐다. 마상 창던지기는 기원전 5세기 말부터 도입된 종목으로 말을 탄 채로 창을 던져 기둥에 세워진 방패에 정확하게 창을 꽂는 경기였다.
해상 경기는 배의 노를 저어 선박의 속도와 정확한 움직임을 겨루는 경기로 아테네에서 가까운 팔레론이나 피레우스 항구가 있는 사로니코스만 부근에서 열렸다. 대(大)판아테네나이아 운동경기가 열린 경기장은 주 경기장의 역할을 한 아고라, 기원전 330년경부터 등장하는 판아테나이아 스타디온, 횃불 경주가 열리는 아카데메이아에서 아고라에 이르는 공간, 마상 경기가 열린 경마장, 사로니코스만에 있던 해상 경기장에 이르기까지 아테네의 중심부와 주변부가 고루 해당했다.

아테네의 도시 확장과 시민 통합

경기장은 선수들의 출신과 종목에 따라 위치가 달랐다. 종목별로 경기장의 위치를 살피면 아테네 선수가 참여하는 경기와 다른 폴리스 출신 선수가 참여하는 경기의 수행된 공간적 구성에 차이가 있었다. 다른 폴리스 출신 선수가 참여하는 육상경기는 아고라와 스타디온에서 치러졌다. 마상 경기도 아고라에서 열리다가 팔레론에 있는 경마장에서 치러졌다. 아테네인만이 참여할 수 있었던 횃불 경주와 희생제는 아카데메이아에서 아크로폴리스까지 이어지는 공간에서 벌어졌다. 역시 아테네인만이 참여했던 해상 경기도 피레우스와 팔레론, 멀리는 수니온곶에 이르는 사로니코스만의 해안에서 벌어졌다. 즉, 대(大)판아테나이아 운동경기는 비아테네 출신 선수들을 위한 경기가 아고라-스타디온을 중심으로 치러지고, 아테네 출신 선수들을 위한 경기는 아카데메이아-아고라-스타디온-사로니코스만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치러졌다.
특히 기원전 4세기에 대(大)판아테나이아의 스포츠 공간 확장에는 아테네의 강력한 해상력을 대외에 선보이고자 하는 의도와 더불어 부족 간의 결속을 다짐으로써 아테네인들에게 폴리스에 대한 연대 의식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아카데메이아에서 수니온에 이르기까지 아테네의 영역을 경기장의 공간으로 아우름으로써 너른 아티카(Attica) 지역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에게 아테네인으로서의 소속감을 높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올리브 숲이 우거진 아카데메이아 사로니코스만의 해안 지역은 도시 문화의 수혜로부터 동떨어진 곳이었다. 대(大)판아테나이아의 운동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 주변 지역에는 평소와 달리 사람이 모이고 활기를 불어넣었다. 도시 문화의 혜택을 일상적으로 누리지 못했던 시민들도 운동경기가 벌어지는 동안은 축제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시민적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었다.
대(大)판아테나이아의 운동경기는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중심과 외곽, 육상과 해상에서 여러 종목을 열어 아테네의 도시 공간을 전면적으로 활용했다. 운동경기는 아고라를 중심으로 했다가 스타디온이 건설된 기원전 4세기 후반에 변화가 나타났고, 도시 북서쪽의 아카데메이아와 도시의 남서쪽에 이르는 사로니코스만에 있는 항구와 해상까지 경기장으로 활용하면서 도시 전체가 운동경기를 위한 스포츠 콤플렉스로 기능했다.

글을 쓴 김혜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불가리아학과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테네대학교에서 고전 고고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그리스의 예술과 문화유산, 여행과 역사에 관한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와 집필, 전시 기획 및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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