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를 믿게 하는 스포츠
생산적인 삶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스포츠는 ‘갓생’이다.
제한된 시간을 활용해 자기 관리를 하고, 하루하루 나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운동은 내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고 있다는 자기통제의 증거가 되고 있다.
글 . 이선미

2017년 세계를 휩쓸었던 ‘욜로(YOLO)’ 열풍에 이어 2020년엔 ‘플렉스(Flex)’가 유행하며 일시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라이프 트렌드가 이어졌다. 2010년대 장기 불황 시기,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세대는 손에 잡히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에 현재를 희생하기보다는 여행이나 취미생활 등 지금 바로 가질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을 추구했다. 욜로와 플렉스는 타인이 보기에 무의미하더라도 ‘자기만족적’이고, ‘즉각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바뀐 건 코로나19로 일상이 위협받으면서부터다. 여행을 떠나거나 맛집 탐방을 하는 등 일상의 작은 행복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2022년부터는 고물가·고유가·고금리·고환율이 본격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가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MZ세대는 일상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는 하루를 무탈하게 유지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투자에 몰두하는 MZ세대의 ‘갓생’ 문화는 급속히 자리 잡았다. ‘갓생’은 ‘갓(God)’과 ‘인생(人生)’을 결합한 신조어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며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하루에 2리터 이상 물 마시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명상하기 등 거창하지 않은 작은 목표를 실천하며 일상을 유지할 성취감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계속해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MZ세대가 갓생을 실천하는 이유다. 욜로와 갓생은 ‘나’와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같지만 ‘현재’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욜로의 ‘현재’가 ‘후회 없이 즐겨야 하는 순간’이라면 갓생의 ‘현재’는 ‘좋은 습관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5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 번째는 미세먼지다. 코로나19 전, 한국인의 일상 걱정거리 중 가장 큰 건 바로 미세먼지였다. 매일 미세먼지 지수를 체크하며 방어해야 했다. 두 번째는 지구온난화다. 이번 여름에도 이상고온으로 유례없는 더위를 겪었고, UN은 지구가 ‘지구 보일링(boiling)’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세 번째는 여전히 우리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19, 네 번째는 인공지능(AI)이다. 본격적인 AI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편하지만은 않다. ‘나의 삶과 직업은 어떻게 될까’라는 불안이 엄습하곤 한다. 마지막은 작년부터 짙게 드리운 경기침체의 그림자다. 중국 성장 둔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촉발된 경기침체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얼마나 지속될지, 삶에 어떤 타격을 줄지 예측도 어렵다.
이 키워드들의 공통점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MZ세대는 이 질문에 대해 ‘외부 환경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은 통제할 수 있다’는 답을 찾았다. 증가하는 통제 불가능성 속에서 공고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욕구는 더 증가하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에서 자주 보이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방법,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들에 대한 담론이 이를 증명한다. 예전의 ‘나’는 외부의 시선에 맞춰 ‘계발’해야 하는 존재였다면 지금의 ‘나’는 스스로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재정립해야 하는 ‘관리’의 존재다.

나를 믿게 하는 작은 성취
‘나의 세계를 공고히 지키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결국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로 귀결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 MZ세대에게 ‘오늘’은 미래를 준비하는 때가 아닌 현재를 사는 ‘일상’이다.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 먼 미래를 위한 희생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 만보 걷기, 물 2리터 마시기 같은 소소한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데서 만족감을 찾는다.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크지만 불확실한 이득’보다 ‘작지만 확실한 이득’을 선택한 MZ세대가 추구하는 건 ‘성공’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취’다.
‘갓생’의 핵심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다. 작은 계획부터 실천하는 일상, 즉 매일의 루틴과 계획을 ‘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은 습관에도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자기 관리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2022년, 새벽 시간을 자기 관리에 활용하는 ‘미라클모닝’이나 ‘바프(보디 프로필 촬영)’ 열풍이 분 것도 ‘갓생’의 일환이다. 이러한 작은 성취는 결국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야 할 삶의 주인인 ‘나 자신’을 믿게 하는 토대가 된다.
한편, MZ세대에게 ‘갓생’은 곧 스포츠이기도 하다. 성장 관리 앱 ‘그로우’가 지난 1월, MZ세대 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도전하고 싶은 갓생 분야 중 ‘운동’이 71.4%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노력의 결과물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스포츠를 통한 ‘갓생 살기’를 해나가는 원동력 중 하나는 ‘인증’이다. 이들은 하루하루 나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과 공유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출근하는 루틴을 SNS에 인증하면 칭찬과 부러움의 댓글이 달리는데 이는 MZ세대가 운동을 더 꾸준하고 열심히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처럼 꾸준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인증하기 위해서는 루틴 만들기는 필수다. 거창한 목표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루틴으로 시작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 MZ세대들 사이에선 작지만 구체적인 루틴을 만들기 위한 팁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기도 한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자 하는 MZ세대는 습관 형성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8년 론칭한 앱 ‘챌린저스(Challengers)’는 이용자 스스로 도전 목표를 설정하고 미션을 수행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운동이나 학습, 시간 관리 등 500여 종의 공식 챌린지와 직접 목표를 만드는 챌린지 중 하나를 선택해 도전할 수 있다. 원하는 목표에 돈을 걸고 미션을 100% 달성하면 참가비 전액을 환급받을 수 있고, 추가 상금도 획득 가능하다. 다양한 목표 중 가장 인기 있는 목표는 ‘아침 기상’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이 챌린지는 누적 참가자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
운동 습관을 길러주는 플랫폼도 주목받고 있다. 2022년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올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건강·운동 부문에서 4위를 차지한 ‘콰트(QUAT)’는 ‘5일 운동 습관 만들기’를 중심으로 사용자에게 맞는 운동과 가벼운 스트레칭 등을 코칭하는 구독형 홈 트레이닝 플랫폼이다. 콰트의 트레이닝 영상은 운동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0분 내외로 구성됐다. 이는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의 선호가 높다. 전체 사용자 중 2030세대가 64%를 차지하며 이들이 꾸준히 반복 시청하는 운동 카테고리는 스트레칭으로 나타났다.


MZ세대가 열광하는 루틴은 일상의 만족감을 얻는 것에 1차적인 목적이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일상을 괜찮은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좀 더 나은 나’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희생보다 확실한 오늘의 성취를 선택했지만 작은 성취를 쌓아나가 더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좀 더 괜찮아진 나’를 외부에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된다.
성공한 운동 서비스들이 ‘운동 습관’을 만들고, 커뮤니티 기능 등을 통해 목표와 성취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게 그 증거다. 일상의 작은 성취를 통해 ‘하루하루 좀 더 나아지고 있는 나’를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라도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보며 얻는 성취감과 타인의 긍정적 피드백이 쌓여 ‘나를 믿게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토대가 된다.
지금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열풍은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자기 통제감을 갖고 중심을 세우는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사회의 변화가 점점 빨라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각자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이나 성공에 대한 기준도 제각각 다르다 보니 외부에 흔들리지 않게 나 자신을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해져서다.
MZ세대가 운동으로 ‘갓생’을 추구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운동을 실행하는 작고 디테일한 루틴 만들기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는 것도 그래서다. 가볍고 부담 없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내 삶의 통제력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나의 일상을 든든히 지지하는 힘이 된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운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마음챙김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