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스포츠 영화와 음악이
예술적으로 만나는 순간
스포츠 영화는 스포츠라는 특성상 달리거나 던지고 차는 등 다이내믹한 장면의 비중이 크다.
여기에 캐릭터마다 개인 서사가 녹아있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주요 장면에 적절한 영화 음악(OST)을 삽입해 감동을 더하게 한다는 점에서 음악은 영화의 특정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무르게 한다.
글. 조성진 음악평론가
〈로키〉의 ‘Gonna Fly Now’
주인공인 권투선수 로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 분)가 시합을 앞두고 훈련의 일환으로 필라델피아 미술관 입구로 이어지는 72개의 돌계단과 거리를 달릴 때, 그리고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 단련하는 장면 등 영화의 여러 대목에서 이 음악이 흐른다. 로키가 달리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주제가의 리듬과 러닝 템포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엔딩 신에서는 이 주제가가 활력과는 다른 모드의 ‘폭풍 감동’을 연출한다. 헤비급 챔피언전에서 무려 15라운드까지 마치고 피투성이가 된 로키가 링에서 애드리언을 애타게 찾는다. 애드리언 또한 많은 관중을 헤치고 링 쪽으로 달려가며 계속 “로키”를 부른다. 바로 이 장면에서 주제곡이 흘러나오며 둘 사이의 사랑의 애틋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로키> 1탄에서 가장 감동적인 하이라이트 신 중 하나다.
〈로키 3〉의 ‘Eye of the Tiger’
실베스터 스탤론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로키 3> OST도 ‘Eye of the Tiger’로 유명하다. 미국 록 그룹 서바이버(Survivor)가 부른 이 주제가는 4분의 4박자의 전형적인 록 비트를 띤다. 이 곡은 특히 8분음표 구성의 스타카토 리듬으로 절도와 위용을 더한다. 여기에 강력한 드럼 비트가 마치 시합 중 펀치를 날리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모데라토’에 해당하는 108~109BPM의 템포도 달리는 모션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영화 초반, 새 헤비급 챔피언이 된 로키 발보아가 “애드리언, 내가 해냈어!”라고 외치며 챔피언 벨트를 높이 드는데 이때 나오는 음악이 ‘Eye of the Tiger’다. 이 주제가가 흐르며 첫 방어전 성공 및 연속되는 장면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로키의 존재감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처럼 ‘Eye of the Tiger’는 에너지 넘치는 기상과 위용을 가진 사운드의 좋은 예다.
영화 중반, 성공의 달콤함에 안주하기 시작한 로키에게 전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칼 위더스 분)가 “우리가 싸울 땐 자네 눈은 호랑이의 눈 같았어. 그걸 되찾아야 해”라며 초심으로 돌아갈 걸 권하고, 로키는 아폴로와 함께 맹훈련에 돌입한다. 이때에도 주제곡이 흐르며 서서히 전투력을 회복해 가는 로키를 잘 표현해 준다. 로키와 아폴로가 비밀리에 링에서 한판 붙는 파이널 신에서도 이 음악이 흐르며 영화가 막을 내린다. 이 주제가는 기상과 위용을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로키 3〉의 ‘Eye of the Tiger’
휴 허드슨 감독의 1981년 작 <불의 전차>는 아련한 추억이 된 젊은 날의 영광을 OST로 기막히게 잘 녹여냈다. 육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 영화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룬 에릭 리들과 해럴드 아브라함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 ‘반젤리스’가 음악을 맡아 빌보드 싱글과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해럴드 아브라함의 삶을 기리는 장례식에서 그의 동료였던 앤드루 린지가 젊은 시절 육상 선수들과 함께 해변을 달리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불의 전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매우 유명한 장면이다. 바로 이때 주제가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타이틀과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음악이 흐른다.
선수들이 달리는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될 때 상징적인 에코 효과가 함께 흐르며 젊은 날의 아련한추억을 더한다. <불의 전차> OST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에코효과 사운드와 감동의 멜로디는 반젤리스의 야마하 CS-80 신시사이저와 따뜻한 아날로그 테이프 딜레이, 그리고 폭넓은 스튜디오 리버브효과로 구현된 것이다.
이 OST의 장점은 여기에서 끝나지않는다. 이 곡은 134BPM 속도의 4분의 4박자 중심이다. 134BPM은음악의 빠르기 기호 중 하나인 ‘알레그로’에 해당한다. 아련한 추억을 환기시키는 신시사이저 방식과 함께 육상이란 스포츠 특성에 맞게달리는 속도에 최적화된 템포를 적용했다. 앞서 소개한 <로키>가 몸을 푸는 ‘조깅’ 정도의 템포였다면 <불의 전차>는 본격적인 달리기 템포를 지향하는 사운드인 것이다.
그럼에도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반젤리스의 남다른 감각 덕분이다. 그는 통상적인 스포츠 영화와는 다르게 코드 진행을 매우 심플하게 가져갔다. 그럼으로써 리드 테마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하모니 구성으로 스포츠 영화 특유의 역동적 템포보다 특정 장면에 더 중점을 두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밝은 톤의 하모니 구조로 승리와 영광의 순간을 채색한 것도 신의 한 수다.
유명한 인트로 장면은 엔딩 신에서 다시 나온다. 서사를 알고 난 후에 다시 접하는 엔딩 신은 그래서 더욱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불의 전차>는 영화와 음악이 완벽한 일치를 이룬 대표적 사례다.
〈폭풍의 질주〉 ‘Gimme Some Lovin’
토니 스콧 감독의 1990년 영화 <폭풍의 질주>는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로버트 듀발 등 당대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화제작이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OST를 맡아 감동을 더했다. 하나의 테마가 일관되게 흐르며 영화적 감동을 끌어올린 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폭풍의 질주>는 다양한 장르의 여러 OST가 삽입돼 해당 장면마다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데이토나 500’ 레이싱을 앞두고 트랙에서 대기 중인 많은 차와 선수, 스태프를 배경으로 한스 짐머가 작곡한 메인 테마 ‘Days of Thunder’ 가 흐르며 영화가 시작된다. 이 주제가는 록 스타일의 강렬함과 신시사이저 중심의 웅장한 사운드가 결합된 게 특징이다. 마치 록 음악 특유의 질주감과 스피드, 그리고 거대한 엔진 굉음과 메커니즘 등 제반요소를 음악에 담아낸 듯한 느낌을 준다.
레이싱카끼리 충돌하며 사고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1960년대 록의 명곡 중 하나인 ‘Gimme Some Lovin'’이 흐른다. 147BPM의 빠른 4분의 4박자가 특징인 곡이라 레이싱의 결 및 스피드감과 잘 어울린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클레어가 시합 중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인 카레이서 콜 트리콜에게 죽음과 싸울 만큼 레이싱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스피드 때문이지. 제어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의 의미와 본질을 정확하게 정의한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세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를 흥분과 감동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한계 극복의 순간마다 울려 퍼지는 OST는 스포츠와 음악이 하나로 만나는 가장 눈부신 예술적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조성진은 음악평론가이자 스포츠한국 연예부국장으로 재직 중인 언론인이다. 작가로서 다수의 음악 관련 저작물을 발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