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채우는 우리들의 함성
“
승리를 염원하며
연대와 위로를
노래하다
”
스포츠 경기장의 열기는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와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이 교차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우리가 경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는 이미 승리를 향한 염원과 서로를 향한 연대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단순한 흥을 돋우는 수단을 넘어 응원가는 한 시대의 역사와 집합적 기억을 담아내는 강력한 문화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경기장의 함성 뒤에 숨겨진 응원가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본다.
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선수들은 달리고, 관중인 우리는 노래한다.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라면 무엇하러 경기장에 가겠는가. 아, 물론 숨소리조차 억제해야 하는 경기도 있다. 테니스가 대표적이며 탁구, 체조 마루운동, 피겨 스케이팅도 선수들을 위하여 잠시 응원을 자제한다. 그럼에도 그 종목들마저도 플레이가 잠시 멈추면 열렬히 응원한다. 배구의 경우 리시브와 서브, 스파이크에 맞춰 관중들은 ‘하나~두울 셋’을 외친다.
응원가는 더 말해 무엇하랴. 축구나 야구 같은 대규모의 야외 경기 때 우리는 경기장으로 가면서 벌써 노래 를 부른다.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나오지도 않았음 에도 부른다. 왜? 누구를 위하여? 응원가는 선수들을 위해 부르는 것이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부른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수많은 관중의 응원에 의해 완성된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응원가는 1909년 7월 22일 자 〈황성신문〉에 실린 ‘야구단운동가’로 보인 다. 이 노래는 ‘소년남자가’라는 제목으로 〈대한매일신보〉 1909 년 7월 24일 자와 〈신한민보〉 1912년 2월 15일 자에 실리기도 했다. 근대 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도 1916년에 출간한 『창가집』에 ‘야구전’ 을 수록하였다. “배팅 들고 썩 나서니 원스트라이크 다시 한 번 갈겨 보아라, 홈런으로 세컨드야 주의해라 공 굴러간다 어화 홈인이로다” 라는 가사다.
그 이후 우리의 스포츠 역사에서 응원가는 역사적인 경기만큼이나 우리의 집합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스포츠가 국가 정책의 중요 수단이 되고 도시의 일상 문화가 된 1970년대 이후에 ‘3-3-7’ 박수와 ‘아리랑 목동’은 응원문화의 고전이었다. 국가대항전, 대학 라이벌전, 사내 체육대회, 중고교 운동회 등에서 이 노래는 쉼 없이 울려 퍼졌다. 비록 경기 흐름과 때로는 무관하게 응원을 위한 응원이 되기도 했지만 각종 대회에 ‘응원상’이 있었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현대사의 집합적 기억이다.
그 정점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손에 손잡고’였고 새로운 변화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다. ‘손에 손잡고’는 국위선양 시대를 대표하며 ‘오 필승 코리아’는 21세기 글로벌 문화를 보여준다. 1990년대 프로축구 문화의 대중화 과정에서 당시 부천을 연고로 했던 부천SK의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유럽 응원문화를 접목하기 시작했고 1995년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등 여러 PC 통신의 축구 동호회가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붉은악마’로 응집하였고 이 과정에서 ‘오 필승 코리아’가 탄생하였다. 이 곡은 유럽에 널리 퍼진 작자 미상의 노래를 부천 서포터스가 번안하여 응원가로 썼고 이를 붉은악마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응원가로 개사하였다. 이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음악가 김도영과 강달상이 편곡하여 붉은악마 응원단이 발매한 앨범 ‘꿈☆은 이루어진다’에 수록했다.
이는 우리의 스포츠가 국위선양에서 글로벌 시대의 문화적 표출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이후 국내 프로야구장과 축구장, 그 밖의 여러 경기장에서 종목의 특성과 지역의 역사, 각 선수와 팬들의 개성이 결합된 다양한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롯데자이언츠의 ‘부산갈매기’와 기아(옛 해태)타이거즈의 ‘목포의 눈물’은 시민의 일상 문화에 현대사가 녹아 있는 경우다.
이제 체육활동 지원정책은 단순한
비록 경기 흐름과 때로는 무관하게
응원을 위한 응원이 되기도 했지만
각종 대회에 ‘응원상’이 있었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현대사의 집합적 기억이다.
”
다른 나라의 응원가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리버풀 클럽의 여러 응원가는 “빅토리아 시대의 찬송가 합창, 이탈리아 축구팬들이 부르는 노래, 남아메리카 축구 팬들이 외치는 구호와 함성 그리고 비틀즈 열풍이 차츰 하나로 융합”된 결과이다. 미국의 재즈 찬송가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성자가 행진할 때)은 잉글랜드의 거의 모든 경기장에서 울려 퍼진다. 물론 특정 선수를 위한 응원가도 많다. 당연히 현역 선수 수만큼이나 다양하여 일일이 거론하기는어렵지만, 단 한 곡, ‘위~송~빠레~’는 기억할 만하다. 박지성, 세 글자의 네덜란드 발음이다. 박지성이 PSV 아인트호벤으로 진출했을 때 그곳의 광팬들은 ‘지성(위송)’, ‘박(빠레)’을 쉬지 않고 외쳤다. 지금 당장검색해 들어보자. 순간, 우리의 마음은 다시 경기장으로 향한다.
이러한 열광의 노래들 중에서 리버풀의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은 각별하다. 그 도시가 치른 쓰라린 상처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응원가다. 1989년 영국 노팅엄의 축구장 힐스보로에서 96명의 리버풀 팬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였고 정부와 경찰이 27년 동안이나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 긴 세월 동안 리버풀 팬들과 유족들은 이 노래를 불렀다. 참사 27년 만인 2016년 4월,영국 법원이 전면 재조사를 결정했고 총리가 정부를 대표하여 사과를한 후 팬들과 유족들은 ‘You'll Never Walk Alone’을 또 불렀다.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와 독일 뮌헨과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경기장으로도 퍼져 나갔다.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노래다.
일부 국가와 도시의 경우 당장의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는 응원가가울려 퍼진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물론 이번 월드컵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의 경우 카사블랑카의 라이벌인 라자AC와 위다드AC의 응원가가 유명하다. 라자의 팬들은 ‘F'bladi Delmouni(나의 조국에서 나는 핍박당하네)’를 부른다. 위다드 팬들도 강력하고 투쟁적인 응원가를 부른다. 항구 도시 케니트라의 ‘케니트라 AC’ 팬들도 모로코의 정치 상황에 저항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응원가는 스포츠의 일부로, 선수들과 함께 그리고 팬 저마다의 집합적 열광으로 울려 퍼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팬들은 주드 벨링엄을 위하여 비틀즈의 명곡 ‘헤이 주드’를 불렀다. ‘Hey Jude, refrain.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헤이 주 드, 세상의 모든 짐을 너 혼자 짊어지지 마.)’ 그 노래를 들으면서 벨링엄은 울먹였다. 그뿐인가. 노르웨이 팬들이 엘링 홀란과 선수들을 위하여 ‘바이킹 로우’를 외쳤고 아르헨티나의 팬들은 메시를 위하여 뜨거운 노래를 불렀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출전국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지침에 따라 ‘골 세리머니 노래’와 ‘승리 축하 노래’를 제출했다. 잉글랜드는 밴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제출했고 미국은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을 선택했다. 그들은 이 노래를 자주 들을 수있었다. 우리 대표팀은 신선한 드럼 비트로 시작하는 밴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제출했다. 아쉽게도 체코전 승리 당시 단한번 들었지만 가사는 스포츠 응원가로 더없이 아름답다. “솔직히 나보다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 데이식스의 이 노랫말처럼 앞으로 수많은 경기장에서수많은 선수가 아름다운 경기를 펼칠 것이고 바로 그 옆에서 수많은팬이 뜨거운 노래로 응원할 것이다.
정윤수 는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이며, 2002년 월드컵 전후로 하여 스포츠 칼럼과 축구 해설을 해왔다. 스포츠 인권 향상과 스포츠 도시 실현에 관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