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이
도시의 엔진이 되려면
정부가 K-팝 열기를 등에 업고 세계 수준의 다목적 아레나·돔 확보 의지를 천명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장 후보들도 앞다투어 건설 공약을 내놓는다.
관심과 의지는 반갑지만, 과거의 실수를 더 큰 명분과 예산으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경기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엔진’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그 엔진을 작동시킬 올바른 순서와 원칙이다.
글.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 도시의 엔진이 된 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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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의 스포츠 경기장은 중세 도시에서 성당이나 왕궁이 수행했던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 주말 맨체스터 시민들은 대성당 대신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모여, 성가 대신 영웅 홀란드를 위한 구호를 외친다. 도시는 스포츠팀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뉴욕 여행자의 버킷리스트에는 양키스타디움과 매디슨스퀘어가든이 포함된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구단이 약 10억 파운드를 투자한 민간구장으로,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수익 모델을 기획했다. 그 결과 축구 이외에도 미식축구(NFL)·콘서트·복싱 등을 소화하며 2024/25 회계연도 상업수익만 2억 7,700만 파운드를 기록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동맨체스터 낙후 지역 재개발의 중심축이 되어 1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매디슨스퀘어가든은 NBA와 NHL 경기를 핵심 콘텐츠(Anchor)로 삼고 공연, 격투기 등을 더해 전체 매출 9억 4,000만 달러를 올린다. 런던 O2 아레나(이하 O2)는 2025년 한 해 239회 공연을 통해 290만 장의 티켓을 팔았고, 2008년 이후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이다. 제대로 기획·운영되는 경기장은 도시의 브랜드이자 정체성이며, 관광·고용·소비를 창출하는 경제 엔진이다.
- 한국 스포츠 인프라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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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도 다목적 아레나와 돔 경기장 신축 논의가 뜨겁다. 하지만 우려가 앞선다. 20년 전 문화체육관광부 공공체육시설 이용활성화 TF에 활동 당시 전국 36개 시설을 전수 조사했을 때, 많은 곳이 도시 규모와 무관한 획일적 설계로 지어져 연간 활용 일수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수백·수천억을 투입해 놓고 일 년에 손꼽을 만큼만 활용되는 시설이 많았던 것이다. 대다수 시설이 국제대회나 전국체전 유치라는 일회성 목적, 혹은 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제대로 된 기획 없이 건설된 결과다.
기존 시설의 운영 구조도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 FC서울의 홈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은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고 구단은 경기 당일에만 대관해서 쓰는 구조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어느 팀 홈구장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흔적이 지워진다. 창원에서는 NC 다이노스와 창원시의 묵은 갈등이 구단의 연고지 이전 검토로 번졌다.
공연 인프라로서도 부족함이 많다. 수도 서울에 1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실내 공연장은 1986년에 체조경기장으로 지어진 KSPO DOME(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이 유일하고, 이마저도 전문 공연을 위한 음향·조명·백스테이지·가변 플로어 등 다목적 활용을 위한 설계는 미비하다. NBA 프리시즌이나 세계적 아티스트의 월드 투어에서 서울이 배제되는 이유는 '담을 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변화의 실마리는 보인다. 창동 서울아레나가 2027년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대전한화생명볼파크는 공공 소유-민간 장기 운영 모델을 통해 창단 최초 홈 관중 100만 명 돌파라는 성과를 거뒀다.
- 절호의 기회, 하얀 코끼리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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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은 분명하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필수 성공 요인을 전제로 기획된 인프라다. 첫째, 스포츠 발전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세계 수준의 경기 환경과 관중 경험을 갖춘 구장이 생겨야 선수가 성장하고, 팬이 모이며, 구단이 산업으로 자립할 수 있다. 둘째, 도시의 복합 문화 거점 역할을 해야 한다. 비경기일의 공백을 공연·이벤트·상업으로 채우는 다목적 공간으로 진화할 때, 경기장은 도시의 엔진이 된다. 셋째, 자체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스폰서십·명명권·프리미엄 티켓·F&B·관광까지 수익원을 다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세금으로 유지비를 메우는 구조가 반복된다. 넷째, 그 도시의 스포츠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 경기장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명승부와 영웅들의 기억이 쌓인 시간의 저장고다. 우리는 이 가치를 한 번 잃은 경험이 있다. 1925년 개장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스포츠 시설 동대문운동장이 헐렸을 때, 한국 스포츠는 경평 축구의 열기, 차범근의 활약, 고교 야구의 환호를 포함한 기억과 서사를 잃었다.
스포츠를 앵커로 설정하고, 목적에 맞는 설계를 처음부터 반영하며, 수익을 다변화하고, 민간 전문 운영사가 장기적으로 책임지는 구조가 없으면 결국 막대한 유지비에도 실익은 없는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 가 만들어질 우려가 있다. 서울과 기타 지자체의 여러 스타디움·아레나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네 가지 방향성과성공 요건을 기획·설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선거철에 쏟아지는 공약 가운데 이 조건을 담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가 그 공약의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경기장을 짓는 것은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선수가 한계를 향해 달리고 관중이 결과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는 그 공간에 공연· 이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일이다. 그 도시의 스포츠 서사가 쌓여가며, 시민전체가 그 에너지를 공유하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정부의 의지와 지자체의 관심이 모아진 지금이 기회다. 세계의 성공한아레나들은 스포츠를 토대로 삼고 잘 기획된 수익 모델과 콘텐츠를 구성했다. 우선순위는 정치적 수사와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순서와 원칙, 그리고 채워 나갈 내용이다.
글로벌 복합 경기장·아레나 성공 요인 비교
| 구분 |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런던) |
런던 O2 아레나 | 매디슨 스퀘어 가든 (뉴욕) |
도쿄 돔 |
|---|---|---|---|---|
| 소재지 | 영국 런던 해링게이 | 영국 런던 그리니치 | 미국 뉴욕 맨해튼 | 일본 도쿄 분쿄 |
| 개장 연도 | 2019년 | 2007년 (전신: 밀레니엄 돔) |
1968년 (현 건물) | 1988년 |
| 규모(수용) | 약 6만 3천석 | 약 2만석 | 약 2만석 | 약 5만 5천석 |
| 소유·운영 | 구단 소유·운영 (민간 자체 투자) |
공공 소유 AEG 25년 민간 운영 |
MSG 엔터테인먼트 (민간 상장법인) 소유·운영 일체 |
미쓰이 부동산 산하 도쿄 돔 코퍼레이션 독립법인 운영 |
| 주요 앵커 |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
ATP 파이널스 +대형 공연 |
NBA 닉스 NHL 레인저스 |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
| 비앵커 콘텐츠 |
NFL·복싱·콘서트 F1 카팅 체험관 유럽 최장 바·브루어리 |
K팝 포함 연간 239회 공연·이벤트 (2025년 기준) |
공연·격투기 가족쇼·잔류 이벤트 |
콘서트·이벤트 주변 상업·호텔· 어트랙션 생태계 |
| 핵심 성공 요인 |
다목적 전용 설계 (인조잔디 내장 등) 비축구 수익 다변화 |
전문 민간 운영 다양한 콘텐츠 믹스 2008년 이후 매년 흑자 |
스포츠-공연사 간 아레나 라이선스 계약으로 수익 공유 |
스포츠+상업+ 어트랙션 생태계 통합 운영 |
| 연간 수익 | 총매출 5억 6,500만 파운드 상업 수익 2억 7,700만 파운드 한화 약 9,819억 원 |
총매출 1억 3,010만 파운드 세전이익 6,480만 파운드 한화 약 2,261억 원 |
총매출 9억 4,270만 달러 한화 약 1조 2,821억 원 |
총매출 약 730억 엔 한화 약 6,424억 원 |
※ 매출 수치는 각 구단·운영사 공개 연간 보고서 및 언론 보도 기준. 토트넘은 2024/25 회계연도, O2는 2024년, MSG는 2024/25 회계연도, 도쿄돔은 2023 회계연도 기준.
글을 쓴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는 스포츠 산업전문가다. 문화체육관광부 공공체육시설 이용활성화 TF에 참여해 전국 스타디움· 아레나 36곳을 직접 평가했다. 조선일보에 월간 칼럼 「스포츠 르네상스」를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 스포츠가 성장 국가 모델에서 선도 국가 모델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