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스포츠를 돌아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 쓰기, 여행을 다녀온 뒤 사진을 정리해 SNS에 기록하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중요했던 일들을 적기.
잘 떠나보내는 일은 잘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되짚어 보고, 기억해야 할 부분들은 간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2025년, 스포츠계 역시 크고 작은 사건들로 떠들썩했다.
어떤 일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으로 술렁이게 만들었고, 어떤 상황은 당황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것들을 모두 지나 스포츠는 내일로 나아간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가슴 찡했던 장면들

스포츠에는 늘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기쁨은 승자의 몫이고 슬픔은 패자의 것이다. 결과에 따라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러나 감동은 다르다. 메달을 따고 웃는 선수는 물론 시상대에 서지 못해 울고 있는 선수를 보더라도 우리의 가슴은 찡해질 수 있다. 2025년 올 한 해도 스포츠는 숱한 명장면과 함께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그것이 스포츠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글. 권종오 기자

역사의 현장에 울려 퍼진 애국가

중국 하얼빈.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소였던 이곳은 가을에도 상당히 춥다. 겨울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25년 2월 이곳에서 8년 만에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렸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희망 차준환과 김채연은 나란히 역전 드라마를 썼다. 김채연이 3년 연속 세계 챔피언 일본의 사카모토 가오리를 상대로 역전 금메달을 따낸 지 3시간 만에, 차준환이 낭보(朗報)를 전했다. 9.72점 차 열세를 딛고 일본의 에이스 가기야마 유마를 상대로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다른 곳도 아닌 하얼빈에서 남녀 모두가 일본 선수를 꺾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김채연은 “역사적인 곳에서 딴 메달이라 더 뜻깊고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아요.”라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만든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출전했던 18살 피겨 요정은 일주일 뒤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까지 제패해 한국 여자 피겨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특히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에서 종아리 경련을 참고 투혼의 금메달을 목에 건 장면은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채연은 “사실 아시안게임 직후부터 통증이 있었지만,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이를 악물었다.” 고 털어놓았다.

슈퍼스타의 아름다운 뒷모습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던 4월 8일, 역대급 명장면이 연출됐다. 그 주인공은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김연경. 흥국생명은 이날 정관장을 세트 스코어 3대 2로 꺾고 6시즌 만에 통합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하며 프로배구 여자부 최다인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두 팀의 챔피언 결정전은 한국 배구사(史)에 길이 남을 명승부 중의 명승부로 팬들은 스포츠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3번의 시즌 동안 준우승에 그쳤던 아쉬움을 말끔히 털어낸 슈퍼스타 김연경은 16년 만에 V리그(대한민국 프로배구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지난 2005년 프로에 데뷔해 2009년까지 3시즌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고, 모두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던 김연경은 기자단 투표에서 역대 두 번째 만장일치로 챔프전 MVP에 선정됐고 이어 정규리그 MVP까지 받으며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다. 한국 배구 사상 최초로 MVP로 데뷔해 MVP로 은퇴한 것이다.
사상 첫 3시즌 연속이자 통산 7번째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슈퍼스타는 배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사(史)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정들었던 코트를 떠났다. 그를 사랑했던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계를 향해 쏜 한 발

계절의 여왕 5월에 스포츠팬들은 잔잔한 감동에 휩싸였다. 사격 선수 김우림이 청각장애를 딛고 한국 신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는 제8회 대구광역시장배 전국사격대회 10m 공기소총 남자 일반부 본선에서 635.2점을 쏴 종전 한국 기록을 1.1점 경신했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데플림픽(Deaflympic, 청각장애인 세계 스포츠 대회)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둔 데 이어, 비장애인 선수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일반부 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인간 승리 스토리를 쓴 것이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은군청 동료와 합작해 10m 공기소총 남자 단체전에서 1,893.4점을 기록하며 이날 하루에만 두 개의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는 놀라운 장면을 보여줬다.
경기가 끝난 뒤 김우림은 수화 통역을 통해 “청각장애가 있지만, 사격에서는 오히려 집중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면서 “이번 기록 경신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강연술 대한사격연맹 회장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장애인 선수가 비장애인 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역전승

한국 여자골프의 인기는 남자골프를 훨씬 능가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만큼 국제 경쟁력이 있는 데다 대회마다 ‘인생 역전’ 드라마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욱 극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지난 8월 말, 무명에 가까운 신다인의 드라이버샷이 카트 도로에 떨어진 뒤 150m 이상 구르면서 무려 408m의 비거리를 기록해 커다란 화제가 됐다. 그는 결국 이 대회에서 극적 우승을 차지하며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5년 한국 골프 최고 명장면은 10월 19일에 나왔다. 상금 랭킹 74위였던 이율린은 내년에 2부 리그로 밀려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상태였다. 오직 우승만이 생존할길이었는데 최종 라운드 16번 홀까지 선두 박지영에 2타나 뒤져 패색이 짙었다. 그런데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났다. 17번 홀에서 약 4.5m 버디 퍼트를 떨어뜨려 한 타 차로 추격했고, 마지막 18번 홀에서 6m 가까운 버디 퍼트를 넣어 극적으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통산 10승의 베테랑 박지영과 연장 5번째 홀까지 사투를 벌인 이율린은 8m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홀에 넣으며 생애 첫 우승과 함께 상금 2억 1600만 원을 품에 안았다. 2부 리그 추락 위기에서 2027년까지 1부 리그 즉 정규투어에서 뛸 수 있는 출전권을 거머쥐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쓴 그는 펑펑 울었다.

독수리 훨훨 날아오르다

2025년 시즌 프로야구 팬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팀은 단연 한화 이글스. 지난 3월 한화는 최고 시설을 갖춘 새 홈구장 ‘대전한화생명볼파크’를 개장했다. 새 보금자리에서 한화는 시즌 내내 LG와 선두 경쟁을 펼치며 펄펄 날았다. 코디 폰세(Cody Ponce)가 투수 부문 4관왕을 차지하며 리그를 평정했고, 여기에 라이언 와이스(Ryan Weiss)의 활약까지 ‘원투 펀치’의 위력은 10개 구단 가운데 최강이었다. 또 베테랑 류현진이 9승을 따냈고, 2003년생 문동주와 2004년생 김서현, 2006년생 정우주가 한층 향상된 기량을 발휘하며 신· 구 조화를 이뤘다. 타선에서도 주장 채은성과 2000년생 노시환, 2004년생 문현빈이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지막 한 걸음이 모자랐다. 한국시리즈에서 LG에 1승 4패로 무너지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한화로서는 19년 만에 야구를 가장 잘했지만 26년 만의 우승이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토록 갈망했던 정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화 팬들은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열성적인 팬들 덕분에 한화는 일찌감치 구단 최초로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응원가를 힘차게 따라 부르는 한화 팬들의 목소리는 결과를 떠나 스포츠의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었다.

2026년 새해는 그야말로 스포츠의 해이다.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6월 FIFA 북중미 월드컵, 9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차례로 열린다. 태극전사들이 2025년 보다 더 벅찬 기쁨과 더 진한 감동을 선사해주길 기대해본다.

글을 쓴 권종오 기자는 현재 SBS 국장급 선임기자로, 1990년부터 스포츠 전문기자 한 길만을 걸어왔다. SBS 유튜브 <별별스포츠>에도 출연하여 스포츠 팬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재미와 감동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