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포츠에 빠지는 진짜 이유
‘스포츠’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이야기가 ‘승부’와 ‘기록’이다.
하지만 경기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이기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땀 흘리는 상쾌함, 호흡이 엮이며 생기는 몰입, 함께 뛰는 웃음 이것들이야말로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결국, 스포츠의 핵심은 승리도, 기록도 아닌 ‘즐거움’이다.

기록보다 오래 남는 것들 : 승부 너머, 삶을 채우는 스포츠의 얼굴
해 질 녘까지 공을 차고, 술래가 되어 친구를 잡으려 달리고, 그러다 넘어져도 금세 털고 일어나 웃던 때가 있었다.
순위도 없고 점수도 없었지만 매번 이긴 것 같은 기분. 그게 뭔지도 모르고 좋기만 했다. 요즘 세대는 다르지 않냐고?
키즈카페에서 새파랗고 푹신한 매트 위로 몸을 던지거나 탱탱볼을 던지며 노는 것에도 승패는 없지 않나?
우리가 스포츠에 빠져 드는 진짜 이유, 어쩌면 그 시작은 아주 오래된 몸의 기억, 아무런 대가 없이 뛰놀던 날들의 환희 속에 있지 않을까.
글. 이철웅 스포츠심리학 박사

얼마 전 막을 내린 2025 무바달라 시티 DC 오픈(ATP 500 테니스 토너먼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남자 단식 결승 경기가 끝난 후 펼쳐졌다. 알레한드로 다비도비치 포키나가 접전 끝에 역전패한 후 눈물을 흘리자 상대였던 알렉스 드 미노가 다가와 위로하며 격려의 말을 전한 것. 이어 우승 소감에서도 드 미노는 트로피를 받을 자격은 상대에게 있었고 자신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포키나는 대단한 경쟁자고 선수라며(A hell of a competitor and player), 상대의 실력과 투지를 치켜세웠다.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두 선수의 모습에 사람들은 뜨겁고 치열했던 경쟁에서보다 더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승패가 사라진 순간 스포츠는 더 다정해지는 듯하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함께하는 기쁨, 감동과 같은 미덕들이 후드득 쏟아져 나온다.
누가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정확한지를 가르는 일은 삶의 많은 영역에서 일상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경쟁에 중독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경쟁’ 하면 ‘스포츠’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스포츠에서 경쟁이야말로 정수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치열하게 맞붙는 순간의 긴장감, 극적인 역전승의 짜릿함, 금메달을 향한 투지와 몰입까지. 사람들은 승부와 경쟁이 빚어 내는 드라마에 환호한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의 이면에는 ‘가르기’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며 때로는 냉정하다. 극명하게 순위가 갈리고, 누군가를 1등으로 만들면서 나머지를 패자로 만든다. 더 이상 기록을 단축하지 못한 이들은 도태되거나 곧 실패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경쟁에 치우친 스포츠는 승자 독식의 서사로 포섭된다. 결국 즐거움은 결과의 틀 안에 갇히고, 성과는 기쁨을, 패배는 반성만을 강요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경쟁이 무조건 지양해야 할 속성인 것처럼 비치는 탓에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경쟁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고 치열한 승부는 감동과 환희, 성취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단지 그것이 스포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때로는 경쟁이 걷힌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함께하는 기쁨, 몸을 움직이는 순간의 즐거움, 그리고 놀이로서의 유희와 해방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승보다도 경기 직후 드 미노가 눈물 흘리는 포키나에게 다가가 안아준 그 모습에 더 오래 박수를 쳤는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엔 점수도, 순위도 없었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다정함만 있었다. 때론 경쟁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꺼야만 스포츠가 간직한 숨은 미덕들이 얼굴을 드러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감각은 속도보다 숨 고르기, 승부보다 웃음, 혼자보다 함께라는 변화에 반응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선형적 라이프 사이클에서 이탈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생활체육의 흐름 또한 치열한 경쟁 체계 안에서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빠르게 달리는 게 목적이 아닌, 오래 웃으며 달리는 법을 배우는 슬로우 조깅(Slow jogging), 건강과 환경을 함께 지키는 플로깅(Plogging), 경쟁 없는 응원 속에서 지역 공동체를 구축하는 파크런(Park run)까지, 기록 대신 순간을, 순위 대신 관계를 중시하는 달리기들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자전거를 타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도심을 점령하는 시클로비아(Ciclovia), 서울자전거대행진,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서울 같은 스포츠 액티비티들은 속도 경쟁이 아닌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중시한다. 함께 페달을 밟을 때 흘러가는 도시의 풍경, 나란히 웃으며 가는 거리의 온도, 여유, 배려, 연대 같은 단어들이 이 운동의 중심이 된다.
요가 역시 주목할 만한데, 세계 요가의 날 기념행사나 광화문 달빛 요가 같은 행사들에선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사라진다. 누군가는 앉고, 누군가는 눕고, 경쟁의 프레임을 벗어나 모두가 자기 속도에 머무르며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함께 휴식하는 기쁨을 만끽한다. 이 완만하고 고요한 호흡과 움직임을 통해 사람들은 경쟁이 아닌 공감과 위로를 경험하며 타인과 함께 쉼을 나누고, 자기 자신과 조용히 소통한다.
빠르게, 세게, 더 멀리 가는 방식이 아닌, 천천히, 함께, 깊게 움직이는 방식. 지금 사람들이 스포츠에서 찾는 건 기록이 아니라 삶의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진짜 얻어야 할 것은 기록이나 승부보다 이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닐까.
스포츠의 미덕은 특별하고 거창한 행사나 눈에 띄는 장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미덕은 우리 가까운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집 앞 공원을 가볍게 걷는 산책이나 주말 아침 가족과 동네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일, 저녁 운동장에서 친구와 주고받는 캐치볼 같은 것들이다. 규칙도 심판도 없지만, 함께 몸을 움직이고 웃는 순간에 스포츠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가 드러난다. 경쟁이 없기에 오히려 더 솔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유대감은 더욱 단단해진다.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없어도 괜찮다. 땀이 살짝 밸 정도로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근심은 어느새 밀려나고 그 자리에 활력과 웃음이 스민다. 이처럼 ‘놀이로서의 운동’은 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한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이렇게 즐기는 운동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건강 매체인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Harvard Health Publishing)은 운동을 ‘의무’가 아닌 ‘놀이’로 받아들일 때 뇌가 더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 뇌는 일상의 걱정에서 잠시 벗어나고, 창의적 사고를 회복하는 데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과도한 경쟁에 경도되지 않고 스포츠가 놀이로서 자신과 타인의 경험이 즐겁게 공존하는 개인의 서사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단지 건강에 좋은 활동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회복의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기록이 남지 않으면 실패로 느끼고, 순위 밖에 있으면 뒤처진다고 여기는 그런 기류 속에 우리의 삶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앞으로의 여정은 좀 더 느슨한 경기여도 괜찮지 않을까. 누구와 함께 걷는지, 어떤 풍경을 지니는지, 얼마나 웃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그런 경기 말이다.
오늘 저녁 잠깐이라도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서 보자. 경기장이 아닌 놀이터에 간다는 마음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기록보다 감각을, 타인의 기준보다 나의 웃음을기준으로 삼는 과정을 음미하며 몸을 움직이는 기쁨을 느껴 보자.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 우리의 삶을 바꾸는 즐거운 변화가 시작될지 모른다.
기록이나 승부보다 이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