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알고리즘
= 찐팬 양성

인터넷은 이제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로 인해 세상과 좀 더 친해질 수 있기 때문.
그중 나의 관심사에 대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주는 신통한 기술, 알고리즘을 잘 이용하면 나의 취향과 관심사의 깊이를 더할 수도 있다.
특히 올림픽, 월드컵 등의 일시적인 이벤트가 많은 ‘스포츠’계에서는 알고리즘을 통해 지나가던 일반인을 ‘찐팬’으로 입문시키고 있다.
스포츠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알고리즘의 세계에 대해 알아본다.

글. 박인우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대(大)인터넷 시대의 서막

1982년은 우리나라 스포츠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스포츠 중 대표는 ‘야구’, 그중에도 군산상고, 선린상고, 경북고, 충암고, 광주일고, 천안북일고 등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고교야구였다.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청룡기, 그리고 대통령배 등의 전국대회가 열릴 때면, TV 방송은 황금 시간대에 고교야구 경기를 생중계했다. 축구에 대한 열풍은 그때도 지금처럼 대단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국가대표 경기 외에는 일반인들의 관심이 많지 않았고, 실제 직접 경기를 보거나 방송의 생중계도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해 고교야구는 경기에 참여하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같은 지역이거나 그냥 선호하는 고등학교라서 관심을 보이는 ‘팬’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과 당시 정권의 정치적인 의도와 결합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프로 스포츠’ 시대가 시작되었다.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삼성 이만수 선수의 홈런은 그전까지 전혀 몰랐던 그의 평생 팬이 되기에 충분했다.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는 그의 소식을 찾아보면서, 그에 대한 ‘팬심’을 그가 은퇴할 때까지 유지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최근 여느 팬처럼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원정 경기를 보러 가거나, 그의 유니폼이나 모자를 사서 착용하지도 않았다.인터넷은 1990년대 초에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와 WWW(World Wide Web)이 만들어지면서 일반인들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웹사이트가 늘어나게 되면서, 1994년 다양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하여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털사이트로 ‘Yahoo’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Naver’와 마찬가지로 이 사이트들은 정보를 항목으로 분류하고, 각 항목을 선택하여 원하는 정보를 찾게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 구축된 정보의 도서관이었다. 1998년 ‘Google’이라는 글자와 검색창만 보여주었던 구글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미 정리된 정보를 열람하는 데 익숙했던 사용자에게 사전에 정돈된 정보 목록도 없이 사용자가 직접 검색하라고 하니 당혹스러웠다. 2005년에 시작된 ‘Youtube’도 처음에는 항목으로 구분하여 영상을 제공하는 열람 방식을 기본으로 했으며, 점차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2016년부터는 알고리즘과 AI 기반하여 영상을 추천해 오고 있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AI와 알고리즘 기반 콘텐츠 추천은 이미 디지털 환경에서는 거의 표준이 되고 있다. 사실 알고리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는 기초이자 핵심에 해당한다. 알고리즘(Algorithm)은 ‘과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나 절차’를 의미한다. 예컨대, 화면에 ‘축구, 농구, 야구’를 제시하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해당 종목의 공을 화면에 표시한다’라는 과제를 컴퓨터가 수행하도록 프로그램을 작성하려면, 그림과 같은 알고리즘부터 작성한다.

이 알고리즘에서 핵심은 입력한 정보에 부합하는 결과를 판단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선택이 ‘야구’라면, 출력할 결과는 ‘야구공’이라는 판단이 이 알고리즘에는 포함되어 있다. 물론, 콘텐츠를 추천하기 위한 알고리즘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예컨대, 유튜브는 개인 배경, 사용 기록, 검색 기록, 좋아요·싫어요, 댓글, 구독 등의 정보를 분석하여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처럼 사용자의 특성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을 콘텐츠 기반 필터링이라고 한다. 사용자와 특성이 비슷한 집단에서 시청한 콘텐츠를 추천하기도 하는데, 이를 협업 필터링이라고 한다. 사용자 특성을 종합하고, 그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선정하고, 유사한 집단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간단치 않으며, 실제 자연어 처리, 머신러닝, 딥러닝과 같은 AI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콘텐츠 추천은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정도를 넘어서 사용자가 경험할 콘텐츠의 범위를 규정하거나 제한하는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특성은 스포츠에서 시공의 제약을 벗어난 ‘찐팬’을 확보하고,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으로 AI와 알고리즘은 편향된 정보 제공,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 등으로 인해 극단주의자도 양성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알고리즘은 찐팬의 확보에 큰 역할을 하겠지만, 한편으로 ‘광팬’도 만들 위험이 있다.

팬에서 찐팬이 되기까지

스포츠에서 ‘팬’은 특정 스포츠 종목, 팀, 선수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중에서 ‘찐팬’은 특정 종목, 팀, 선수에 강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삶의 위안과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을 의미한다.스포츠에서 팬은 5가지 유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Hunt, Bristol, & Bashaw, 1999). 첫째, 일시적(Temporary) 팬이다, 특정 이벤트나 현상에 의해 일시적으로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마다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지역적(Local) 팬으로 태어난 곳이나 거주지 등 지역 연관성 때문에 흥미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다. 예컨대, 프로 스포츠 구단이 특정 지역명을 팀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팬 확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셋째, 헌신적(Devoted) 팬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이 대상 스포츠에 대한 동기와 애착을 보이는 사람으로 승패와 관계없이 애착과 충성심을 유지한다. 팀이 위치하는 지역을 벗어나서 생활하더라도 팀에 대한 열성과 헌신이 변하지 않으며, 팀이나 선수에 대한 충성심을 언제나 유지한다. 넷째, 열광적(Fanatical) 팬은 헌신적인 팬의 특성을 보이면서 동시에 스포츠 대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심리적 특성을 보인다. 평소에도 특정 스포츠 대상의 팬임이 드러나도록 복장이나 행동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기능장애적(Dysfunctional) 팬은 훌리건처럼 스포츠 대상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고, 나아가 반사회적, 파과적, 일탈적 행동까지 보인다.
스포츠에서 ‘찐’팬은 헌신적 팬과 열광적 팬을 의미한다. 찐팬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속성을 보인다. 첫째, 성적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응원한다. 둘째, 그렇지만 승리할 때에는 기뻐하고, 패배할 때에는 매우 슬퍼하는 감정의 기복을 보인다. 셋째, 스포츠 대상의 이미지를 자신의 일부로 내면화한다. 넷째, 경기를 관람하고, 굿즈를 구매하며, 원정 응원도 불사한다. 마지막으로 응원복이나 응원가 등을 공유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여 문화를 공유한다.
스포츠 대상에 대한 일시적, 지역적 팬에서 헌신적, 열광적 팬, 즉 찐팬으로 발전하는 심리적 과정(Funk & James, 2001)에서 알고리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 인식단계에서는 특정 스포츠나 팀의 존재를 인지한다. 예컨대, 컬링은 2014 소치올림픽 때 처음으로 출전권을 얻었지만, 태릉선수촌에서 연습하기 위해 입촌하지도 못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전용 경기장에서 팀킴이 준우승하기까지의 방송을 접하면서 이 종목에 대한 인지도는 크게 증가했다. 컬링에 대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유튜브를 비롯하여 SNS에서 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찾아본 일시적 팬들은 이후에 쏟아지는 관련 동영상, 뉴스, 대회 기록, 선수별 활약상 등에 관한 콘텐츠로 인해 점차 지역적 팬으로 성장하게 된다.
둘째, 매력단계는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나 호기심이 생기는 단계이다. 해당 종목의 역사, 우리나라와 더불어 해외 주요 국가의 팀 현황, 특정 선수, 경기 기록, 대회 현황, 향후 계획 등을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된다. 알고리즘은 팬의 콘텐츠 이용 기록, 개인적 배경, 유사한 팬의 콘텐츠 선호도 등을 고려하여 스포츠 대상에 대한 하이라이트 영상, 뉴스, 팬 메시지 등과 같은 맞춤형 심층 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셋째, 애착단계에서 스포츠나 팀이 개인의 자아 개념과 연결되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가진다. 특정 팀이나 선수의 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상의 승패에 감정적으로 몰입한다는 점에서 헌신적 팬의 속성을 보인다. 애착 단계의 팬은 굿즈를 구매하고, 경기 일정을 확인하며, SNS를 팔로우한다. 알고리즘은 팬의 활동 자료를 분석하여 스포츠 대상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 인터뷰, 경기 기록, 향후 일정 등에 관한 개인화된 콘텐츠를 제공한다. 심지어, 머신러닝을 통해 이 단계의 팬이 구매할 확률을 계산하여 일정별 마케팅 메시지를 자동으로 발송하기도 한다. 예컨대, 토트넘 홋스퍼 FC는 손흥민 활약상, 훈련 영상, 인터뷰, 개인 굿즈 정보 등을 한국인 팬의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 실시간으로 자동 안내한다.
마지막 단계는 충성심으로 스포츠 대상이 자신의 삶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이나 복장 등에서 특정 대상의 팬임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행사, 온라인 커뮤니티, 원정 경기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찐팬에 속하는 열광적 팬이 된다. 알고리즘은 스포츠 대상의 경기를 직접 분석해 볼 수 있는 사이트(예컨대, kickoff.ai)로 안내한다. AI가 실시간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 시각적으로 제시하여 경기 감상하는 것을 넘어 분석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알고리즘은 대상에 대한 팬 퀴즈, 투표, 경기 관람, SNS 참여 등을 자동으로 개인화하여 안내한다. 스포츠 대상의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팬 등급이 올라가게 되고, 경기표, 굿즈 구매에서 우선권을 받게 되며, 궁극적으로 찐팬에 이르게 한다.

스포츠에서 알고리즘은 찐팬이 형성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편으로 부작용도 발견되고 있다. 찐팬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건강한 소비와 발전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다. 알고리즘을 통해 일시적, 지역적 팬을 헌신적, 열광적 팬으로 끌어올리되 기능장애적 팬까지는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알고리즘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찐팬과 더불어 제공자에게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찐팬은 제공되는 콘텐츠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다양한 견해를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알고리즘 제공자도 콘텐츠 선별 기준을 공개하고, 특히 다양한 관점이 노출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해야 한다.

글을 쓴 박인우 교수는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수업체제설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수업설계와 수업매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재직 중이며, 대학의 교육과정 개발, 최신 매체의 교수-학습에서의 활용, 미래 교육 환경 등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