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ESG 협의체,
스포츠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CEO 래리 핑크(Laurence Douglas Fink)가 2020년 1월 연례 서한에서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를 고려하겠다는 투자 방향을 발표한 후 전 세계에 ESG 경영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분야에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 스포츠 이해관계자도 ‘스포츠 ESG 협의체’를 구성해 스포츠 분야에서 ESG 경영 확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글  .  신성연

ESG 경영 제대로 알기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의 개념은 2004년 국제기구인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 UNGC)가 지속가능 금융을 위해 스위스 정부와 공동으로 설립한 이니셔티브인 ‘후 케어스 윈(Who Cares Win)’이 발표한 보고서(Connecting Financial Markets to a Changing World)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2006년 4월 유엔 환경계획 금융부문(UN Environment Program Finance Initiative, UNEP FI)과 UNGC의 협력을 통해 책임투자 원칙(PRI)을 수립해 ESG 활동에 대한 평가 기준이 마련됐다.
세계 최대 규모 국부 펀드인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책임투자 원칙을 고려해 석탄, 담배, 핵무기 생산이나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기업, 윤리적이지 못하거나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기금 중 세계 세 번째 규모인 한국의 국민연금 역시 2022년까지 책임투자 비중을 50%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기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경영 전략 수립에 ESG를 포함한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운동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취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경영 성과를 창출해야 투자받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ESG 경영 확산 이전에도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 창출) 경영이 보편화됐지만 기업 경영의 기본 요소인 재무 자원 확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ESG 경영은 기업의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경영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포츠에 웬 ESG 경영?

ESG 경영은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투자를 받는 기업을 대상으로 확산됐지만 심각한 수준의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로 기업뿐만 아니라 각국의 정부와 공공 부문까지 ESG 경영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2020년은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ESG의 중요성이 대두됨과 동시에 코로나19라는 낯선 바이러스가 등장하며 인간의 환경 파괴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하는지를 체험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EU는 기업지속가능공시(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나 기업 공급망 인권 및 환경 실사(Due dilligence for supply chains)와 같은 법제화를 통해, 미국은 시장 주도의 자발적 ESG 경영으로 출발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증권거래위원회, 노동부, 환경보호국과 같은 주요 기관에서 연방 수준의 ESG 관련 규정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을 시작으로 법제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ESG 경영이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을 포함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조직 경영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스포츠는 국가 구성원이나 시민의 사회적 통합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넓게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가 대항 스포츠 이벤트에서, 좁게는 프로스포츠 리그의 구단 간 경기나 학교와 클럽 스포츠에서 다양한 방식으로의 정책 수단이 되고 있다. 한편,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경쟁과 승패라는 가치를 지녔으며 경쟁은 궁극적으로 ‘승리’ 또는 ‘우승’으로 수렴되는 최종 목적을 위해 수많은 기관과 조직이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나 팀, 개인의 승리를 위해 ESG를 포함한 많은 가치가 공식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소외돼 왔다. 과거에 학교 운동부 성과 달성을 위해 학생 운동선수 개인의 학습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던 시스템, 대규모 국제대회를 위한 경기장 건설로 인한 환경훼손과 지역 주민 간 갈등 유발 등이 대표 사례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스포츠 생태계를 위해서는 스포츠 분야 이해관계자 개인이나 조직 경영에도 ESG 경영 시스템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속가능한 스포츠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길

2023년은 한국 스포츠에 큰 획을 긋는 한 해가 되고 있다. 스포츠 분야별로 ESG 경영 도입과 확산을 위한 다채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지난 9월 18일에는 스포츠 분야 이해관계자가 뜻을 모아 ‘스포츠 ESG협의체’를 구성해 ‘스포츠 ESG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7개의 의제 설정을 통해 앞으로 스포츠 분야에서 지속가능 경영을 확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가 경영 의사결정에 고려할 필요가 있는 사안을 제시하고 있다. 스포츠 ESG 협의체 설립 의의를 살피면 스포츠로 창출할 수 있는 ESG 가치의 확산을 위해 스포츠 이해관계자가 ESG 협의체를 구성하고, 각 이해관계자가 현재 수행 중인 ESG 경영 활동을 협의체 차원에서 공동으로 추진해 스포츠 분야에 ESG 가치를 더욱 확산하고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다. 협의체의 구성은 스포츠 관련 국내 주요 공공기관과 비영리단체, 지역 단위 체육회, 대학교와 학회 등 스포츠 관련 교육기관, 스포츠 종목별 행정 조직 등 정부와 학계, 그리고 스포츠 현장의 실무 분야를 종합적으로 포괄한다.
2023년 연말까지 60여 개의 스포츠 관련 기관과 조직이 협의체에 합류할 예정이고 추후 스포츠 전 분야로 참여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을 발표했다.
스포츠 ESG 협의체의 주요 활동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환경적 이슈(E) 측면에서 협의체 참여 기관이 조직의 경영 활동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나 오염물 발생을 감소시킬 수 있는 보다 개선된 환경 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이슈(S)와 관련해서는 스포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인권 문제나 승부 조작 행위와 같이 사회적 가치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셋째, 조직의 지배구조(G)와 관련해 투명성을 강화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인식을 확대하며 조직 전반에 윤리적 경영을 내재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스포츠 ESG 협의체는 앞으로 3년 동안 단계적으로 구성원 확대와 ESG 경영 확산을 계획하고 있다. 공동 선언문을 시작으로 60여 개 기관이 협의체와 뜻을 같이할 수 있도록 하는 구축기를 가진다. 2024년에는 협의체 구성원을 지속해서 늘려가고 스포츠 분야에서 표준화된 ESG 경영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성숙기 단계를 거친다.

나이키코리아·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모든 이가 스포츠의 즐거움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열린 스포츠 공간 ‘모두의 운동장’을 조성했다
지속가능한 스포츠 생태계, 무엇을 어떻게?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은 경영 활동 과정에서 ESG 이슈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역시 이해관계자가 지금까지 ESG 이슈는 다른 가치들과 비교해 중요성이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우선적 가치에서 제외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ESG 법제화는 스포츠 관련 기업은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밸류체인에 포함돼 있는 한국 기업은 EU집행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공급망 인권 및 환경 실사를 수행하고 기업 경영 활동 전반에 걸쳐 ESG 이슈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와 같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를 국내에서 유치하고자 할 때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지속가능 정책이나 스포츠 종목별 주요 행정기관의 요구에 따라 ESG 경영 성과 기준을 충족시켜야 국제 대회 개최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포츠 ESG 협의체는 지속가능한 스포츠 생태계 조성을 위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나? 이해관계자를 군집화하고 각 군집에서 필요로 하는 ESG 경영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포츠 현장에서 ESG 경영이 현실을 반영해 수행될 수 있도록 협의체 구성원 간의 면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체육진흥기금을 활용한 지원 사업 수혜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평가 항목으로 ESG 경영 성과를 추가하고 이에 대한 배점이 확대된다면 스포츠 ESG 협의체에서 정부와 학계를 중심으로 기업의 비재무 정보를 표준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실시될 수 있다. 그리고 국제 스포츠대회 국내 개최를 위한 지원 과정에서 대회를 주최하는 시도 단위 체육회나 종목별 단체, 지자체의 ESG 이슈 대응 역량을 고려하는 정책이 시행된다면 스포츠 ESG 협의체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ESG 관련 정책 도구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스포츠는 뛰어난 경기력과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을 바탕으로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스포츠 생태계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포츠와 직간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자연환경과 사회,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 스포츠의 본질인 경쟁과 승패를 넘어 중요한 가치들을 지켜 나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스포츠 ESG 협의체의 역할이 기대된다.

글을 쓴 신성연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스포츠산업연구실과 데이터분석센터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스포츠산업 정책과 기업 경영, 소비자행동, 데이터 분석과 연구방법론에 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