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세대를 잇고 연대하는 스포츠

스마트폰으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외로운가.
고독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 된 시대, 혼자인 사람들이 늘어가는
일상에서는 땀을 나누며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는 공간이 있다.
스포츠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고,
고립된 세대를 하나로 묶는 연대의 언어이자 ‘사회적 처방’이다.

글. 황향희 강원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연결 사회의 역설
고독사 3,600명 시대의 그늘

스마트폰 화면 속 “좋아요”와 이모티콘으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이지만, 현대인들이 마주한 고독과 사회적 고립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적 질병으로 부상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31.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단절된 일상으로 이어져, 2022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기준 연간 고독사 사망자가 3,600명을 넘어서는 등 사회적 고립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고립의 그림자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취업난 속에 사회적 관계를 단절한 2030 고립·은둔 청년은 국내 약 54만 명으로 추산되며, 직장과 가정에서 소외된 중장년층 역시 위험군에 노출되어 있다. 홀트-룬스타드(Holt-Lunstad) 교수 연구팀은 심리학 학술지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2015)를 통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치명적이며, 조기 사망 위험률을 26%에서 32%까지 높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23년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신설하고 외로움을 전지구적 공중보건 위협으로 규정했다.

치료 대신 동호회 활동
사회적 처방으로서의 스포츠

정부의 상담 서비스나 사회복지관의 돌봄 프로그램 등 기존 보건·복지 체계는 ‘피부양자’라는 낙인효과로 인해 고립 청년이나 취약계층의 진입 문턱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스포츠는 ‘운동과 재미’라는 일상적인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낸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 교수는 저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을 통해 지역 스포츠 모임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 활동이 상호 신뢰와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 통로임을 보여주었다. 운동장에서 나누는 격려가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공동체의 붕괴를 막는 연대 체계가 된다는 의미다.
국제사회는 이미 스포츠의 이러한 사회적 효용성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2019년부터 약물치료 대신 지역사회 스포츠 동호회나 걷기 모임 참여를 유도하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 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의료 영역에 국한됐던 건강 증진의 개념을 사회적 관계 회복으로 확장하여 고립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러닝크루와 파크골프
운동장에서 허물어지는 세대의 벽

스포츠가 지닌 가장 강력한 사회적 기제는 ‘세대 간 장벽 완화’에 있다. 직장이나 학교, 카페 등 연령대별로 파편화된 일상 공간과 달리, 지역 내 운동장은 70대 노년층부터 20대 청년층이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실제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활동하는 ‘러닝크루’에는 대학생과 4050 직장인이 나란히 대열을 맞춰 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파크골프장이나 테니스코트에서는 구력 있는 시니어 회원이 초보 회원에게 조용히 조언을 건넨다. 직함과 나이를 내려놓고 팀워크와 경기 규칙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세대 갈등의 간극이 자연스럽게 메워지는 것이다. 서울시체육회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체육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단순한 체육시설 개방을 넘어 ‘자치구별 생활체육 리그’와 ‘시민참여형 스포츠 교실’을 확대 운영하고 있다. 주기적인 만남을 보장하는 지역 기반의 생활체육 커뮤니티는 거창한 복지 정책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운동을 마친 뒤 나누는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라는 짧은 인사 한마디는 외로운 개인에게 한 주를 버텨낼 사회적 지지 기반이 된다. 경쟁을 넘어 관계로 나아가는 스포츠,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 고립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처방’이다.

박창범은 상지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로, 스포츠 현장에서 소외되어 온 마이너리티를 주된 연구 참여자로 삼아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과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특히 스포츠를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적극 장려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스포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연구와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스포츠 인권 및 스포츠와 인공지능의 접점에 관한 연구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저서로 『인공지능이 스포츠 심판이라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