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한
‘진짜 휴식’의
조건
현대인은 ‘쉬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제대로 쉬는 법은 잊고 산다. 종종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그래도 좀 쉬었어.” 라고 말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더 공허하고 집중이 흐트러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렇게 ‘쉬었다는 착각’ 속에서 신경계는 계속 경계와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피로는 오히려 축적된다. 진짜 휴식은 단순히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반복하는 ‘가짜 휴식’의 함정을 짚어보고, 뇌과학이 제시하는 ‘좋은 휴식의 조건’을 함께 살펴본다.
글. 김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퇴근 후 소파에 누워 드라마를 몰아보거나 단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긴장을 풀고, 틈만 나면 유튜브나 SNS 숏폼을 켜는 것이 요즘 많은 사람들의 휴식 습관이다. 그 순간에는 도파민이 나오니 머리가 식는 것 같고 기분이 나아지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더 무기력하고 공허해질 때가 있다. 반대로 퇴근길에 20분 산책을 하거나, 잠깐 글쓰기를 했을 뿐인데도 훨씬 개운해졌던 날도 있을 것이다. 같은 ‘쉼’인데 왜 어떤 것은 나를 더 지치게 만들고, 어떤 것은 진짜 회복의 느낌을 줄까? 진료실에서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필살의 휴식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막상 내가 무엇을 해야 편안해지고, 어떤 활동이 나에게 회복의 긍정적인 감각을 주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생산적인 활동을 멈춘 상태’를 휴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몸이 멈췄다고 해서 마음까지 쉬어지는 건 아니다. 좋은 휴식이란 ‘멈춤’과 ‘회복’이 함께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좋은 휴식’이란 무엇일까? 먼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감각을 선물하는 휴식이어야 한다. 무기력할 때는 활력과 에너지, 즐거움을 주는 활동이 필요하고, 과도한 긴장 속에서는 고요함과 따뜻함, 이완의 감각을 주는 활동이 필요하다. 일하는 중에 피곤하여 몸이 쳐지거나 집중이 안 될 때는 짧은 운동이나 활기찬 음악, 친구와의 대화가 회복을 도와준다. 반면 스트레스와 과도한 긴장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땐 따뜻한 차를 마시며 호흡을 고르거나, 요가·스트레칭으로 몸을 이완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 좀 더 시간이 있다면 과로로 지쳤을 때는 느리고 조용한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이, 권태로 의욕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사람 사는 활력이 느껴지는 시장이나 축제, 새로운 곳으로의 자유 여행이 더 나을 것이다.
둘째, 휴식 활동 중 느꼈던 긍정적인 몸과 마음의 상태가 활동이 끝난 후에도 조금이라도 더 지속될 수 있는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기분이 좋고 재미있지만, 헤어지는 순간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이들이 많다. 어떤 행위가 몸과 마음에 남기는 영향은 사람마다 극히 다르다. 누군가는 노래방에 다녀오면 기분이 풀리면서 그 기억으로 며칠 더 즐거운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큰 소리와 같은 과도한 감각 자극, 과각성과 흥분 때문에 끝나고 나면 오히려 몸이 피로하고 초조함이나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휴식 활동을 할 때 몸과 마음에 어떤 감정과 감각이 남는지, 그 감각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셋째,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휴식이어야 한다. 여행이나 호캉스, 골프, 쇼핑처럼 시간과 비용이 드는 활동은 특별한 선물로는 좋지만, 일상 속에서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는 회복 전략으로는 어렵다. 중요한 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작은 루틴’을 갖는 것이다. 퇴근 후 집 근처를 15분 걸으며 바람을 느끼기, 노트에 그림을 그리거나 짧은 글을 쓰기, 음악 한 곡을 온전히 듣기, 따뜻한 샤워 후 향기로운 로션을 바르는 것—이런 단순한 행위가 우리의 신경계를 회복시킨다.
넷째, 짧아도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휴식은 길이보다 ‘질’이 중요하다. 회의 사이 잠깐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거나, 따뜻한 차의 향과 온도, 맛을 음미하며 마시기,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는 몇 초의 멈춤도 훌륭한 휴식이다. 연구에 의하면 30초에서 5분 내외의 이런 짧은 휴식을 ‘마이크로 브레이크(Microbreak)’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문제 해결 능력과 주의 집중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피로를 줄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섯째, 건강에 해롭지 않고, 내가 원하면 멈출 수 있는, 즉 조절 가능한 휴식이어야 한다. 게임, 수동적인 미디어 시청 등은 중독성이 있어 쉽게 멈추기가 어렵다. 이렇게 조절이 어려운 휴식 활동은 근골격계 통증과 같은 신체 건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 대한 조절력을 떨어뜨려 이차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반대로 건강에도 좋고, 쉽게 조절 가능한 대표적인 휴식 활동이 산책이다. 우리가 굳이 신경 써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긍정적인 자극들이 우리 뇌를 회복 모드로 전환시킨다. 또한 햇볕을 쬐며 걷는 동안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기분이 안정되고, 스트레스 호르몬도 줄어든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쁜 휴식은 무엇일까? 나쁜 휴식은 순간적으로는 기분을 달래지만, 결국 더 큰 피로와 공허함, 조절력의 상실로 자괴감과 후회를 남기는 휴식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 과몰입과 숏폼 영상이다. 조금만 보려 했는데도 자꾸 시간을 빼앗기고, 끝나고 나면 “내가 또 시간을 버렸네.”라는 후회가 남는다. 폭식, 충동적인 쇼핑, 과음, 도박 등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기분이 확 풀리는 듯하지만, 곧 후회와 피로가 밀려온다. 짜고 자극적이어서 당장은 입맛을 확 잡아끌지만, 금세 물리고 속이 더부룩한, 인스턴트 음식과 같은 휴식이다.
뇌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나쁜 휴식들은 뇌의 보상 회로를 과도하게 자극해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비시킨다. 순간적 쾌감은 크지만, 곧바로 수용체 민감도가 떨어져서 같은 만족을 느끼려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그 결과, 뇌는 점점 강한 자극만 찾아가고, 느린 보상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산책이나 대화 같은 작은 즐거움에서 만족감을 못 느끼고, 삶이 점점 시시하게만 느껴진다. 결국 일상은 권태로워지고, 마음은 더 쉽게 지치게 된다.
휴식은 단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아니다. 신경계의 균형을 되찾고, 나를 따뜻하게 돌보며 재충전하는 과정이다. 건강한 일과 휴식의 리듬을 갖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을 더 오랫동안 지치지 않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여러분의 일상에서 휴식이 주는 고요함과 따뜻함부터 즐거움과 활력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란다.
글을 쓴 김은영 전문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학생과 직장인의 스트레스·번아웃·불안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서로는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듣는 마음 말하는 기술』,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