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서울-아테네…
한국 탁구의 신화는 계속된다
‘국민여동생’으로 불리는 탁구스타 신유빈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탁구는 1958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고, 뒤이어 1988년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며 주요 국제대회에서 빼어난 성적으로 한국스포츠를 빛낸 효자종목이다. 신유빈에 앞서 한국 탁구를 빛낸 레전드 5명을 되돌아봤다. 포인트 순위에 인지도, 탁구계 의견,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을 더해 순위를 매겼다.
글. 유병철 기자
이벤트 당첨자 명단은 62p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01
다시 나오기 힘든 탁구여왕
현정화 -
현정화는 전성기에 지금의 신유빈을 능가하는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 특유의 빠른 전진속공형 탁구로 최강 중국을 꺾고 세계 정상에 올랐으니 탁구를 넘어 한국 최고의 스포츠스타 중 한 명이었다. 현정화는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WTT시리즈 4대 주요 국제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는 등 호성적을 냈고, 특히 세계선수권에서 강했다. 탁구에서 세계선수권은 중국 선수들의 출전이 더 많아 올림픽보다 어렵다고 평가된다. 이 대회에서 현정화는 단체전, 단식, 복식 그리고 혼합복식까지 가능한 최대치인 4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이른바 세계선수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4개 주요 대회에서 38.0점을 얻은, 대단한 기록을 보유한 선수이기도 하다.
-
-
02
발트너와 어깨를 나란히 한 ‘한국의 탁구황제’
유남규 -
유남규 역시 4개 주요대회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의 탁구는 ‘기술탁구’다. 예측불허의 서브 기술, ‘꾀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상대를 흔드는 경기 운영은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다. 그는 탁구의 꽃이라는 남자단식 부문에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정상에 올랐다. 특히 1988 서울 올림픽 금메달은 탁구가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까닭에 ‘올림픽 초대 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겼다. 세계선수권에서는 약세를 보였지만 1989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에서 현정화와 함께 혼합복식 정상에 올랐다. 유남규의 성적은 중국의 강호들은 물론, 발트너, 페르손 등 유럽 레전드들의 전성기에 나왔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4개 주요대회에서도 33.3점을 기록한 바 있다.
-
02
발트너와 어깨를 나란히 한 ‘한국의 탁구황제’
-
-
03
탁구스타를 넘어 스포츠행정가로
유승민 -
유승민은 선이 굵은 선수 생활을 했다. 4번의 올림픽에서 1~4위를 기록했는데,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은 탁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그가 ‘발탁구’의 대명사인, 라켓의 단면만을 사용하는 오른손 펜홀더(일본식)를 사용했기에 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주인공이 됐다(요즘은 펜홀더를 사용하지 않는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선배 이철승과 짝을 이뤄 복식 정상에 올랐다. 은퇴 후 유승민은 201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뽑혔고, 이후 대한탁구협회장과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됐다. 스포츠판 ‘선거의 사나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국내는 물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스포츠행정가 및 외교관으로 왕성한 활동이 기대된다.
-
03
탁구스타를 넘어 스포츠행정가로
-
-
04
녹색 테이블의 전도사
양영자 -
지금은 많이 잊힌 듯하지만 양영자는 현정화, 유남규와 함께 4개 주요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3명 중 한 명이다. 21살이던 1983년,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단식 은메달을 따내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 양영자는 이후 후배 현정화와 짝을 이뤄 원조 ‘환상의 복식조’를 구성해 1987 뉴델리 세계선수권과 1988 서울 올림픽을 제패했다. 양영자가 있었기에 현정화가 나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다. 경기 스타일은 차분한 인상과는 다르게 남성적인 드라이브 전형. 간염으로 몸이 약했지만 이를 극복했으며, 은퇴가 빨랐던 탓에 1990년 이후 국제대회 성적이 없지만 1980년대에만 21.4점을 기록했다.
-
04
녹색 테이블의 전도사
-
-
05
사라예보 신화에서 교수, 태릉선수촌장, 국회의원까지
이에리사 -
1973년 4월 10일 새벽,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대한민국 건국 후 첫 구기종목 세계 제패의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주역은 세계선수권 단체전 단식경기에서 19전 전승을 기록한 19세 막내 이에리사였다. 이에리사는 1970 아시아선수권에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단체전, 여자복식, 혼합복식에서 3관왕에 오르며 신화를 예고했다. 국내에서도 종합선수권 단식 7연패(1969~1975년)를 달성했는데 이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경기 스타일은 당시 여자선수로는 보기 드문 오른손 펜홀더 드라이브 전형. 첫 여성 국가대표팀 감독(1976년), 첫 여성 태릉선수촌장(2005년), 여성 체육인 최초의 국회의원(2012년)을 지내며 탁구 역사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가 됐다.
-
05
사라예보 신화에서 교수, 태릉선수촌장, 국회의원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