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되는,
꿈을 이루는 스포츠

스포츠에는 꿈을 꾸게 하는 힘이 있다. 공정한 경쟁과 그를 통해 쟁취하는 승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스포츠 스타들의 땀과 노력은 롤모델로서 열정에 불을 지핀다. 희망과 열정을 심어주는 스포츠. 그것으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글.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꿈도 참 야무지셔”
초등학교 6학년 때, 테니스를 치던 아버지를 졸라 동네 테니스장에 등록했다. 첫 시간 꿈이 뭐냐고 묻는 코치의 물음에 “윔블던에 나가려고요.”라고 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코치가 뱉은 말이 “꿈도 참 야무지셔.”다. 하지만 야무진 꿈은 끝내 여물지 못하고 40년이 훌쩍 흘렀다. 매년 열리는 교수테니스대회에서 예선 탈락만 하다가 무릎에 탈이 나 아예 테니스를 접었다. 나름 비장하게 은퇴를 선언했건만 선배 교수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은퇴는 정점을 찍은 다음에 할 수 있는 거요. 정 교수는 아직 정점을 찍은 적이 없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
그동안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윔블던을 꿈꾸며 라켓을 잡았으리라. 그중 꿈을 이룬 이는 극소수다. 대다수는 여물지 못한 꿈을 간직한 채, 만 19세 4개월의 나이로 ATP 남자 단식 최연소 세계 랭킹 1위가 된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스 같은 선수가 혜성처럼 나타나 우승하는 걸 지켜보며 흐뭇해한다. 어린 천재 선수의 등장에도 흥분하지만, 오랫동안 무명의 시간을 지내다 뒤늦게 꿈을 이룬 언더독(Underdog)의 반란에 더 감정 이입이 된다.
2025년 롤렉스 상하이 마스터스 대회에서 모나코의 발렌틴 바셰로(Valentin Vacherot)는 ATP 마스터스 1000 시리즈 역사상 가장 낮은 랭킹의 챔피언이 되었다. 당시 세계 랭킹 204위.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1위 홀게르 루네를 꺾고 준결승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이 대회 최다 우승자인 노박 조코비치(세계 랭킹 5위)를 2-0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결승에서는 역시 언더독인 아르튀르 린더크네시에게 첫 세트를 4-6으로 내주었으나 이후 연달아 두 세트를 6-3, 6-3으로 잡으며 역전해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결승 상대인 아르튀르와는 사촌지간으로 어릴 적부터 함께 테니스를 치며 꿈을 키워왔단다. 세계 랭킹 1위와 2위가 벌이는 결승전(예를 들면 2015년 윔블던 결승전. 세계 랭킹 1위인 조코비치와 2위인 페더러가 맞붙었다)은 경이로운 경기 수준으로 감동을 주지만 바셰로와 아르튀르와의 결승전은 그들의 신산한 삶의 무게가 주는 감동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스포츠에서 꾸는 꿈은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스포츠는 힘이 세다
‘꿈은 이루어진다’. 온 나라가 들썩였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월드컵 대표팀을 응원하던 붉은 악마가 경기 중에 펼친 문장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응원 구호였으리라.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대형 카드 섹션으로 구현된 ‘꿈은 이루어진다’는 당시의 감격을 상기시킨다. 집단이 함께 하는 스포츠와 이를 응원하는 이들의 염원은 우리 삶에 보다 넓은 배경을 만들고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서는 커다란 의미를 만든다. 이 거대한 힘은 세상이 어둡고 힘들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오랜 인종차별 정책으로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1995년 남아공 럭비월드컵으로 묶어낸다. 당시 남아공에서 럭비는 백인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고 당연히 흑인들에게는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상징으로 여겨져 증오의 대상이 된다. 특히 럭비 국가대표팀 스프링복스(Springboks)의 녹색 유니폼은 이 모든 증오의 상징이었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 증오의 상징을 찢어버리는 대신 뉴질랜드와의 결승전에 유니폼을 입고 참석해 압도적으로 많이 참석했던 백인들의 환호를 받는다. 이를 기점으로 스프링복스를 증오하던 흑인들도 자국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남아공 대표팀이 연장전 끝에 세계 최강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했을 때 만델라 대통령은 인종차별 정책의 상징이었던 녹색 유니폼을 입은 채 백인 주장 피나르에게 우승 트로피를 건네준다. 이 이야기는 훗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의해 <인빅터스(Invictus)>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스포츠는 자국민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경을 초월해 묶는다.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꼽자면 여자 500m 결승전 직후 우리나라 이상화 선수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의 포옹 장면이다. 밴쿠버, 소치 올림픽에 이어 이 종목 3연패에 도전하는 이상화 선수는 올림픽 전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결과는 고다이라 나오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자 일본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경기 직후 이상화 선수는 눈물을 보였는데 이는 3연패에 대한 아쉬움과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후련함이 섞여 있었으리라. 금메달을 확정한 고다이라는 이상화 선수에게 “너는 여전히 나에게 챔피언이야”라고 위로하면서 스포츠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세상에 보여준다.
오랫동안 같은 종목의 라이벌로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경과 우정을 간직하고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몸으로 증명해냈다. 스포츠는 정말 힘이 세다.
기쁘게 세상의 일부분이 되는 방법
라디오 피디이자 작가인 정혜윤 피디는 자신의 꿈을 ‘기쁘게 세상의 일부분이 될 방법을 찾는 것’으로 정의한다. 나는 이 정의가 마음에 든다.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기쁘게 세상의 일부분이 된다. 어떤 사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면 그것은 꿈 때문인 것이다. 다시 테니스를 시작해야겠다.
바셰로와 아르튀르와의 결승전은 그들의 신산한 삶의 무게가 주는 감동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스포츠에서 꾸는 꿈은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글을 쓴 정용철 교수는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있다. 선수들의 멘탈 코치로 활동하며 마음을 다독이고 그들의 꿈을 듣는 걸 즐긴다.